[백진규의 법의 창] 해양수도 이전 특별법, 절반의 성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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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유) 정인 변호사

지난 7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는 ‘부산 해양수도 이전기관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이하 ‘해양수도 이전 특별법’)을 여야 합의로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여야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해양수산부 및 산하기관 이전 관련 법안을 병합해 마련된 위원회 대안이다.

특별법의 제정 취지는 명확하다. 그동안 수도권에 과도하게 집중된 해양행정 기능을 분산하고, 부산을 명실상부한 해양수도로 육성하기 위해 이전기관과 이전기업의 안정적 정착을 국가가 제도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이번 특별법은 그동안의 정책적 선언을 넘어, 법률의 형태로 해양수도를 명문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별법은 공공기관 이전을 단순히 ‘행정적 이주’로만 보지 않는다. 이전기관의 이주 비용, 사무소 신축비, 융자 지원뿐만 아니라, 이주 직원의 주택 공급, 자녀 학업 및 양육 지원, 정주 여건 개선 등 실질적 정착을 위한 다양한 정책 수단을 포함한다.

행정·산업·생활 결합 '해양특화지구' 진전

해수부 기능 강화 제외 이전 지원에 초점

후속 입법·정책 보완 해양행정 분권 이뤄야

해수부 장관이 지정할 수 있는 ‘해양특화지구’ 제도는 이번 법의 큰 진전이다. 해양특화지구에는 이전기관과 기업의 사무 시설뿐 아니라, 공동 주거 단지, 교육시설, 복합 편의시설까지 포함된다. 이는 행정·산업·생활이 결합된 ‘해양행정복합지구’ 개념으로, 단순한 물리적 이전을 넘어 ‘해양도시 생태계’를 조성할 근거가 된다. 또, 해양특화지구 내에서는 용적률 상한을 최대 120%까지 높일 수 있도록 했다. 이는 이주 인력의 주택공급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유연한 도시계획 장치로, 향후 해양산업·해사법률·국제물류 등이 결합한 부산형 해양클러스터로 발전할 토대를 제공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법안을 두고 많은 전문가는 ‘절반의 성공’이라고 평가한다. 그 이유는 바로 ‘해양수산부 기능 강화 조항’이 빠졌기 때문이다. 당초 여야 모두 해수부 본부의 기능을 대폭 강화하고, 부산 이전과 함께 정책 중심부를 이전하는 방안을 논의해 왔다. 그러나 연내 법안 처리를 위해 논란이 되는 기능 강화 부분을 제외하고 우선 ‘이전 지원’에 초점을 맞춘 대안으로 합의한 것이다. 이는 법 제정의 속도를 높이는 선택이었을지 모르나, 본질적 목표였던 ‘해양행정의 실질적 분권’은 미루어진 셈이다.

즉, 이번 법으로 해수부의 물리적 이전은 가능해졌지만, 각 행정부처에 산재해 있는 해양 관련 정책결정권·예산 편성권·인사권 등 여러 핵심 기능이 여전히 중앙에 남는다면, 부산은 이름뿐인 해양수도로 전락할 우려가 크다. 해수부의 핵심 기능은 단순한 행정 집행이 아니라, 국가 해양 전략의 기획과 조정, 국제 해양 질서 대응, 해양안전 정책 수립 등 고도의 전략적 영역에 있다. 해양 관련 기능이 부산 중심으로 재편되지 않는 한 부산이 진정한 ‘해양수도’가 되기는 어렵다.

해양행정 분권의 실질화를 위해서 그리고 부산이 진정한 해양수도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이번 특별법을 출발점으로 삼되, 실질적 기능 이전을 위한 후속 입법과 정책 보완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첫째, 해수부 기능 강화 법안의 조속한 제정이다. 이번 법에서 빠진 각 행정부처에 산재한 해양 관련 기능, 예컨대 조선, 해양플랜트, 해양에너지, 해양물류, 해양레저, 국립 해상공원 등에 관한 정책기획, 예산·인사권 등을 별도의 법안으로 해수부로 이관해야 한다. 둘째, 중앙해양안전심판원(세종)과 해양환경공단(서울) 등 다수의 해양 공공기관을 부산으로 이전해야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셋째, 충분한 예산 지원을 통한 해양특화지구의 실질적 집적 효과를 극대화해야 한다. 법률상 지정만으로는 의미가 없다. 해양산업, 해사법률, 국제기구, 연구 기관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산업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해양산업-행정-사법’이 함께 작동하는 해양혁신 허브로 발전시켜야 한다. 넷째, 부산시의 행정 역량 강화다. 특별법이 아무리 훌륭해도, 이를 집행할 주체의 준비가 부족하면 실효성이 반감된다. 부산시는 중앙정부 의존형 개발에서 벗어나, 해양행정의 분권화를 뒷받침할 전문 조직과 인력을 강화해야 한다. 지방정부가 주도하는 ‘지역 해양정책 플랫폼’이 구축될 때 비로소 법의 정신이 살아난다.

이번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다면, 부산은 비로소 ‘법으로 지정된 해양수도’라는 지위를 얻게 된다. 이는 단순한 명칭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국가가 공식적으로 부산을 해양행정의 중심도시로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법의 제정은 시작에 불과하다. 이전은 공간의 이동이지만, 기능의 이전은 권한의 이동이다. 해양 관련 포괄적, 전문적 기능이 빠진 해양수도는 껍데기에 불과하다. 부산이 진정한 해양수도로 항해하기 위해서는, 이번 법을 토대로 해수부 기능 강화와 해양행정의 분권화를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이전의 법’이 ‘기능의 법’으로 진화할 때, 부산은 비로소 대한민국 해양 정책의 중심으로 우뚝 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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