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경 칼럼] 산업은행 부산 이전을 다시 생각한다
논설주간
동북아 금융중심지 향한 숙원
산은 대체한다는 동남권투자공사
권역별 분산으로 역할 가능할까
글로벌 패권 제조업·첨단기술 결합
남부권 산업생태계 혁신 미래 희망
국가 주도 금융 컨트롤타워 절실
국가균형발전 관점에서 보면 윤석열 정부 최악의 참사는 한국산업은행 본점 부산 이전 무산이 아닐까 싶다. 메가 이벤트로 치자면 2030월드엑스포 부산 유치 실패 충격이 컸던 게 사실이지만 지속 가능성 측면에서는 산은 이전 무산이 보다 본질적 문제로 남을 대목이다. 느닷없는 계엄 선포와 탄핵, 조기 대선을 거치면서 윤 정부 균형발전 정책의 상징과도 같았던 산은 부산 이전까지 정국 풍랑에 휩쓸려 버린 것이다.
산은 이전은 2022년 1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부산 유세 현장에서 지역 공약으로 발표하면서 현실화했다. 당시 캠프 내부에서는 산은을 여의도에 존치하는 방향으로 중론이 모아진 상황이었는데 전격적으로 공약 발표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진다. 윤 대통령은 취임 후에도 국정 과제로 채택하며 뚝심 있게 밀어붙였고 그렇게 서울과 부산, 두 바퀴 국가 성장 전략의 핵심 정책이 됐다.
산은 이전을 공격하는 진영에서는 전격적 공약 발표를 근거로 지역 표심을 잡기 위해 급조한 정치적 결정으로 폄하한다. 하지만 산은 이전은 동북아 금융중심지를 향한 부산의 숙원이었다. 국내 중요 금융기관들의 부산 이전 논의가 구체화한 것은 2008년 ‘금융중심지 조성과 발전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다. 이듬해 금융위원회는 서울 여의도와 부산 문현단지 두 곳을 금융중심지로 확정했다. 서울과 함께 부산을 선정한 데는 금융 분야 수도권 일극화를 막는다는 취지가 배경에 있었다.
2010년 12월 부산서 열린 ‘금융중심지 활성화 정책간담회’에서 국책은행인 산은과 수출입은행의 부산 이전 논의가 공식화한다. 진동수 금융위원장, 허태열 정무위원장, 한나라당 서병수 최고위원을 비롯해 정부와 금융·정치권 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일이었다. 그렇게 지역 염원이 쌓여 윤 정부 국정 과제에 이른 것이다. 국가균형발전위원회가 2023년 5월 산은을 부산 이전 공공기관으로 지정·고시하며 행정 절차까지 마쳤지만, 본사를 서울로 한다는 산은법 개정이 더불어민주당 반대에 막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대선 기간이던 5월 부산을 찾은 이재명 후보는 산은 이전 논쟁에 마침표를 찍었다. ‘표를 얻기 위해 안 될 약속을 하는 건 사기’라는 강한 표현을 동원했다. 산은 이전 반대의 원죄를 덮기 위해 꺼낸 카드가 해양수산부 이전과 동남권투자은행 설립이었다. 그렇게 이 후보는 대통령이 됐고 취임 후 해수부 부산 이전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면서 산은 이전 논란도 자연히 사그라들었다.
그렇다면 산은 이전은 못다 핀 지역의 꿈으로 영영 사라지는 것일까. 그건 어디까지나 해수부의 완전한 기능 이전과 동남권투자은행이 산은 이상의 역할을 온전히 수행한다는 전제하에서다. 최근 동남권투자은행이 동남권투자공사로 바뀌고 지방시대위원회가 ‘5극 3특’ 균형성장 전략으로 각 권역에 지역투자공사를 설립하는 안을 발표하면서 동남권투자은행은 출범도 전에 위상과 역할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한다. 고래가 참치가 되고 멸치가 됐다는 정치적 레토릭이 등장하는 걸 보면 내년 지방선거에서 다시 이슈로 부상할 공산이 크다.
따지고 보면 산은 이전은 대형 금융기관 하나 부산에 가져오는 이상의 의미다. 지역 산업생태계 혁신에는 자본이 뒤따라야 하고 그 컨트롤타워로 산업은행의 역할이 절실한 것이다. 마리아나 마추카토는 〈기업가형 국가〉에서 민간이 투자를 꺼리는 미래 기술과 선도 산업에 리스크를 안고 과감히 투자하는 국가 주도 개발은행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그렇게 과감히 투자하고 돌아온 수익을 다시 미래에 투자하는 선순환으로 국가 주도 혁신을 이뤄야 한다는 것이다. 독일 국영투자은행, 중국개발은행의 녹색혁명 투자를 사례로 소개한다. 우리에게는 산업은행이 바로 그런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곳이다.
이미 수도권은 사람과 자본이 포화 상태다. 새로운 혁신의 바람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곳은 부산을 중심으로 한 남부권이다. 특히 제조업과 첨단기술의 결합을 통한 미래 혁신 산업생태계가 강조되고 있는 지금, 산업은행이 남부권 혁신을 주도하고 국가 미래 성장동력을 키울 절호의 기회다.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이 심화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 국가의 혁신 역량이 강조되는 요즘 산은 부산 이전을 다시 생각하는 이유다. 마침 정부는 2차 공공기관 이전을 본격화했다. 산은도 당연히 이전 대상이다. 애초 산은 부산 이전에 대한 더불어민주당 당론도 2차 공공기관 이전 때 함께 다루자는 것이었다. 국가균형발전 특별법 상 산은은 부산 이전 공공기관으로 이미 결정돼 있다. 2차 공공기관 이전 시 이행만 하면 된다. 국가 미래를 위해 산은의 입지와 역할을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