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을 덮친 건 60m 타워와 하청 관행… '깜깜이 일용직 채용' 근절해야
원청은 하청에 위험 부담 넘기고
하청은 일용직 투입해 원가 절감
숙련공 대신 일용직 주먹구구 투입
"이력 관리로 숙련공 투입해야 안전"
전문가 '근로자 이력 관리제' 한목소리
울산 동서발전 화력발전소 붕괴 사고 엿새째인 11일 오후 보일러 타워 4호기와 6호기가 발파 해체한 후 중앙사고수습본부 관계자들이 실종자 수색 재개를 위해 현장을 살피고 있다. 이날 중수본은 보일러타워 4호기와 6호기를 발파한 뒤 본격적으로 사고가 난 5호기 주변 실종자 수색에 나섰다. 연합뉴스
울산 동서발전 화력발전소 붕괴 사고는 ‘위험의 외주화’가 ‘주먹구구 채용’이라는 후진적 관행을 만나 빚어진 참사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원청이 하청으로 위험을 전가하고, 하청은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깜깜이 인력을 투입했다. 이 구조적 모순이 60m 타워와 함께 9명의 노동자를 덮친 것이다.
업계에서는 중대해재처벌법 등 사후 처벌 강화와는 별개로 이러한 악순환을 끊기 위해 ‘건설 노동자 이력 확인제’의 도입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번 붕괴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은 보일러 타워의 ‘사전 취약화 작업’이다. 40년 넘은 철골 구조물을 정교한 계산하에 해체하는 공정으로 고도의 숙련도가 필요하다.
그러나 막상 현장에 투입된 인력은 대부분 전문성과 거리가 멀었다.
해체 공사는 발주처인 한국동서발전에서 원청인 HJ중공업으로, 다시 발파 전문 하도급 업체인 코리아카코로 넘어왔다. 사고 피해자들은 모두 코리아카코 소속이었다.
매몰된 7명 중 정규직은 1명뿐이었고, 6명은 초보적인 일용직에 가까운 계약직이었다. 특히, 사망자 전 모(49) 씨는 인력사무소의 소개로 현장에 나간 지 4일 만에 변을 당했다.
울산의 한 플랜트노조 조합원은 “발파전문업체는 기술을 가졌을지 몰라도, 막상 이를 수행하는 작업자들이 해체 기능도 없는 ‘조공(기능공을 보조하는 인력)’들”이라며 “축구 감독이 월드컵에 동네 조기축구 선수를 기용한 격”이라고 꼬집었다.
전문성을 요하는 현장임에도 비숙련 인력이 투입되는 이유는 다단계 하도급에 따른 비용 절감 탓이다.
이진형 한노총 전국건설노조 위원장은 “하청업체는 일당 35만 원짜리 작업에 25만~30만 원의 숙련공 대신 18만 원짜리 ‘핫바리(초보 인력)’를 투입해 차액을 남긴다”며 “비용 절감을 우선한 ‘죽음의 외주화’에 일용직 노동자들만 희생양이 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묻지 마 식 인력 수급은 검증 시스템이 없는 ‘깜깜이 채용’이 관행으로 굳어졌기에 가능하다. 이 위원장은 “노조는 이력서를 받아 경력을 확인하지만, 인력사무소를 통해 채용한 인력은 사실상 이력을 확인하는 게 불가능하다”며 “(일용직 작업자들은) 현장에 가서 아침 조회 때 ‘오늘 내가 이런 일을 하는구나’ 알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실태를 전했다.
현장에서는 악순환을 끊기 위한 대안으로 ‘건설 노동자 이력 확인제’가 거론된다. 채용 시 4대 보험 득실 확인을 의무화해 실제 경력을 검증하자는 것이다.
울산 서원노무법인 김익성 노무사는 사고가 빈번한 건설·플랜트 현장만이라도 이를 의무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노무사는 “본인의 동의가 필요하지만 4대 보험 이력은 확인만 해도 기능공인지, 조공인지 바로 알 수 있다”며 “검증된 숙련공 투입만이 참사를 막을 유일한 방안”이라고 말했다.
학계에서도 건설 노동자 이력 확인제 도입에 공감하며 현실적인 적용 방안을 제시했다.
울산대학교 건축공학부 손기영 교수는 이 제도가 투명한 고용 정보 체계를 확립하고, 근로자 숙련도를 판단해 품질 및 안전관리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손 교수는 “일용직 위주의 소규모 현장에서는 매일 유동적인 인력을 등록·관리하기가 어려운 한계도 있다”라며 “‘건설기술진흥법’에 따른 50억 원 미만의 소규모 공사를 제외한 현장에 우선 적용하는 것이 현실적일 것”이라고 조언했다.
공교롭게도, 한국은 호주의 VET(직업교육 훈련)와 RPL(경력 인정) 제도 등을 참고해 이미 지난 2021년 5월부터 ‘건설 근로자 기능 등급제’를 시행하고 있고 국토부 T/F도 구성돼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제도는 아직 플랜트건설 현장 등에서 제대로 활용되지 않는 실정이다.
권승혁 기자 gsh0905@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