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일기] “얘 일 잘한다” 일탈은 구조에서 발생한다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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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보원 사회부 기자

내 사람 챙기고 윗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다. 때로는 좋은 사람 당겨오고 싫은 사람 벌주고 내 마음대로 사는 상상도 해본다. 당연하게도 생각에 그친다. 나에게는 그럴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산소방재난본부엔 인사·징계·의전 주요 권한을 모두 갖는 ‘꿈의 보직’이 있다. 소방령인 소방행정계장은 의전과 행사는 물론 승진, 전보, 징계 등 인사 전반에 대해 막대한 권한을 행사한다.

아니나 다를까 인사 비위 사건이 불거졌다. 본부의 상반기 인사 과정에서 계장 A 소방령과 주임 B 소방위가 특정 직원 인사를 청탁한 것이 내부 감찰 결과 확인됐다. A 소방령은 심사위원들에게 특정 직원의 이름을 적어주거나 평가 서류에 기재된 직원들의 이름을 가리키며 “얘 일 잘한다”라는 취지로 발언했다.

첫 보도 이후 본부는 ‘꼬리 자르기 의혹’에 대한 해명에 초점을 맞췄다. 비위가 발생한 인사 과정에서 본부장 결재를 받은 적이 없으며 개인의 일탈 행위에 대해 철저한 감찰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다만 비위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조직 구조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는 한발 늦었다. 문제 의식의 부재 속에서 수상한 조직 구조가 야기한 인사 비위는 ‘개인의 일탈’로 치부됐다. 과연 몇몇 직원이 ‘빌런’이라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빌런을 만드는 건 ‘구조’가 될 수도 있다. 영화 〈조커〉에서 코미디언을 꿈꾸던 아서 플렉은 범죄와 부패가 만연한 고담시에서 빌런이 됐다. 시장 후보인 토마스 웨인은 본인의 선거 운동에만 몰두한다. 극심한 빈부 격차를 일으킨 고담시의 구조에 관해선 관심이 없다.

개인의 이기심에 제동을 걸려면 제대로 짜인 조직이 필요하다. 삼권 분립, 견제와 균형, 지방분권. 모두 권력의 집중을 막기 위한 제도다. 비단 국가에만 한정되는 논리가 아니다. 작고 친밀한 조직일수록 공과 사, 의무와 권한을 나눌 구조가 필요하다. 적절한 구조의 부재로 발생한 인사 비위는 조직 전체의 책임이다.

인사는 만사다. “만사 오케이!”를 외치기 위해선 조직 내부부터 톺아봐야 한다. 특정한 자리에 권력이 집중돼있지는 않은지, 이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은 없는지 살피는 세심함이 필요하다. 한 조직의 장이자 인사권자인 ‘머리’가 갖춰야 할 덕목이다.

도롱뇽과 같은 하급 생물일수록 불리한 상황에선 꼬리를 잘라내고 도망친다. 하지만 결국 꼬리가 길면 밟힌다. 익숙해진 구조 속 문제를 살필 눈이 흐려진 머리들이 마음을 다잡고 조직을 재정비하길 바란다. 구조 속 살아갈 꼬리들을 위해.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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