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고향’ 의령군 "국어사전박물관 좌초 안될 말"

강대한 기자 kdh@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이우식 등 조선어학회 3인방 고향
군민 주도 우리말 박물관 추진 불구
정권 교체로 공약 사업 '오락가락'
의령군, 후속 조치 없이 관망 중
“소극 행정과 정쟁이 문제” 성토

의령군에 기증된 조선어사전. 의령군 제공 의령군에 기증된 조선어사전. 의령군 제공

‘우리말 독립운동 1번지’ 경남 의령군에서 추진하는 국립국어사전박물관 건립이 좌초될 위기다. 지난 정부 공약사업이 정권 교체와 맞물려 추진 동력을 잃어가는 모습이다.

답답한 지역민들이 직접 한글날 맞이 각종 행사를 개최하며 다시 분위기를 띄우기에 나섰다.

17일 의령군 등에 따르면 국립국어사전박물관(이하 박물관) 건립 사업이 7월 출범한 이재명 정부의 공약사업에서 빠진 것으로 확인됐다.

더불어민주당 밀양·창녕·의령·함안 지역위원회에서 박물관 사업 추진을 제안했지만, 국정 공약엔 끝내 채택되지 못했다.

전 정부와 민선 8기 경남도·의령군 단체장이 모두 공약사업을 내걸고 사업을 밀어붙이던 지난해와는 사뭇 다르다. 의령군은 당시 지역 출신인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재수 위원장(현 해양수산부 장관)을 설득하며 상임위 문턱을 넘어 박물관 건립에 속도를 냈다.

그러나 작년 말께 야당(현 여당)에서 본예산을 단독 수정·통과시키며 사상 처음으로 감액시켰다. 이 과정에서 박물관 관련 예산도 날아갔다.

이후 의령군에서도 마땅한 후속 조치나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관망 중이다.

의령군 관계자는 “지난 3월 업무 협의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담당자가 전향적으로 검토해 보겠다고 했는데, 현재 다른 부서로 이동했다”며 “바뀌신 담당자와는 아직 만나질 못해 진척된 내용이 없다”고 말했다.

박물관은 국·지방비 300억 원을 투입해 의령읍 일대 전체 면적 5300여㎡에 지상 2층 규모로 건립할 계획이다. 내부엔 각종 사전을 관람할 수 있는 영상·모형·체험형 전시관과 박물관 직업 체험, 조사연구 기관 등으로 밑그림을 그렸다.


의령 국립국어사전박물관 조감도. 의령군 제공 의령 국립국어사전박물관 조감도. 의령군 제공

박물관은 표준어 중심에서 벗어나 남북한의 옛말과 방언 등 역사적·지리적인 관점에서 한국어를 연구·교육하는 기관을 목표로 한다.

의령군은 주로 언어(말)문화를 다루면서 한글(문자)만 전시해 온 국립한글박물관과 차별을 뒀다고 강조한다. 게다가 2023년 자체 용역을 벌인 결과 비용 대비 편익(B/C) 값이 1.17로 나와 경제성까지 담보된 상황이다.

의령군은 우리나라 최초 ‘조선말 큰사전’ 편찬을 위해 조선어학회에 거액을 후원한 남저 이우식 선생의 고향이다.

일제 탄압에도 한글 보급 선봉에 섰던 조선어학회 첫 간사장 고루 이극로 선생, 사전을 만드는 과정에서 철학·윤리학 등 전문용어 풀이를 맡았던 한뫼 안호상 선생도 모두 의령에서 태어났다.

의령군민들은 일제강점기 우리 말을 지키기 위해 헌신한 독립운동가들의 업적을 기리며 미래 세대에 민족성을 교육하기 위해 의령에 박물관이 지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정쟁에 사업이 오락가락하고 소극적인 행정에 이맛살을 찌푸린다.

경상국립대 국어국문학과 박용식 교수는 “민족적인 사업을 시행한다는 데 누가 반대하겠느냐”며 “박물관 사업이 저평가되고 늦어지는 건 정치인과 행정에서 누구 하나 발 벗고 나서 뛰는 이가 없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박물관 건립은 처음부터 군민들의 주도로 시작됐다. 박물관 건립추진위원회가 2020년 구성돼 국회 등을 돌며 학술발표를 하면서 본격 논의가 이뤄졌다.

건립추진위는 올해 제579돌 한글날을 맞아 내달 1일 이우식 선생의 묘소를 참배하고 한글날 기념식과 참여 대학생을 중심으로 한 백일장도 연다.


강대한 기자 kdh@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