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4.5일제 도입… 정부 독려에 금융노조 깃발 들었다 [커버스토리]
노동시간 단축 대세냐, 시기상조냐
정부, 내년 예산 325억 원 편성
주 4.5일제 도입 중소기업 지원
금융노조, 임단협 요구안 제시
주 5일제 시행처럼 제도화 주도
영국 주 4일제 실험, 매출 상승
국내 일부 선도입 기업도 효과
“생산성 저하 아닌 반대 결과로”
2004년 주 5일제 도입 이후 21년 만에 주 4.5일제 도입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선거 공약으로 주 4.5일제를 내건 데다 최근 전국금융산업노조(금융노조)가 주 4.5일제 도입을 위한 총파업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금융노조는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총파업 총력 투쟁 결의대회도 연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한 달 기자회견에서 “노동시간 단축은 반드시 해내야 한다. 이것은 국제적 추세”라면서도 “강제로, 법을 통해 시행하는 건 불가능하다. 갈등이 너무 심해 사회적 대화를 통해 점진적으로 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실제로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투쟁은 한국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지난 8~12일에는 영국의 대중교통 노조(RMT)가 주 32시간(주 4일제) 근무와 피로 관리, 근무 패턴 개선,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는 파업을 벌여 런던의 지하철 등 전체 대중교통이 마비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금융노조가 쏘아올린 공 ‘주 4.5일제’
주 4.5일제 도입이 산업 전반의 화두로 떠올랐다. 최근 ‘노란봉투법’ 국회 통과에 이어 정부의 하반기 노동 분야 중점 추진 과제로 주 4.5일제 도입이 꼽히면서 주 4.5일제 도입에 대한 찬반 논의가 달아오르고 있다.
먼저 공을 쏘아올린 건 금융산업노조다. 금융산업노조는 지난 1일 전 조합원을 대상으로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벌여 94.98% 찬성이라는 결과표를 받았고, 오는 26일 전면 총파업에 돌입할 방침이다. 금융노조의 교섭 요구안은 △주 4.5일제 전면 도입 △임금 5% 인상 △신규 채용 확대 △정년 연장 등이다. 금융노조 소속 전국 노조원들은 16일 오후 6시 30분부터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대로에서 약 7000명이 참석하는 총파업 총력 투쟁 결의대회를 연다.
금융노조는 특히 2002년 주 5일제 도입 당시에도 근로기준법 개정에 앞서 금융권이 주 5일제를 전면적으로 시행한 만큼, 이번에도 금융권이 주도적으로 나서 ‘게임 체인저’ 역할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노조는 주 4.5일제 도입을 위한 이번 파업에 대해 “고액 연봉자의 배부른 투쟁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바른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이재명 대통령 선거 공약집도 주 4.5일제 도입·확산을 통해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이하로 노동시간을 감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인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도 “임금 감소 없는 주 4.5일제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정부는 주 4.5일제 도입 지원을 위해 내년도 예산 325억 원을 편성했다. 주 4.5일제를 도입하는 중소기업에 정부가 직원 1명당 월 20만~25만 원을 지원하며 주 4.5일제를 시행하며 직원을 추가로 뽑을 경우, 신규 채용 인력 1명당 60만~80만 원씩 장려금도 준다.
총파업 직전 교섭을 통해 파업이 무산될 가능성도 있지만, 지금까지 은행연합회와 산별노조 간 교섭 분위기는 사측의 ‘수용 불가’ 기류가 강해 파업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과로사회와 결별할 때
해외에서도 노동시간 단축에 대한 논의와 연구가 활발하다. 영국 시민운동 단체 ‘주 4일제 재단’(Four Day Week Foundation)이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4월까지 6개월간 진행한 실험 결과에 따르면, 동일 급여와 업무량을 유지하면서 주 4일만 일하는 방식을 택한 17개 기업 대부분이 전년 동기간과 비교해 매출 증가 효과를 봤고 직원들의 병가 사용도 줄었다. 그 중 런던에 본사를 둔 소프트웨어 기업 브랜드파이프는 매출이 130% 가까이 급증했다. 17개 모든 기업은 실험 종료 후에도 주 4일제를 유지하기로 했다.
미국 보스턴대학교 연구진이 미국, 영국, 호주, 캐나다, 아일랜드, 뉴질랜드 소재 기업 141곳을 대상으로 번아웃, 직무 만족도, 신체 건강, 정신 건강 등 4가지 핵심 지표를 추적한 결과 우울증과 번아웃 완화 효과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에서도 경기도나 제주도, 울산 중구청과 같은 지자체 뿐 아니라 최근 개별 기업들에서도 주 4일제 또는 주 4.5일제를 도입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기업교육 전문업체 휴넷은 2022년 7월부터 주 4일제를 시행하고 있고, 시행 1년 후 채용 경쟁률 3배 상승, 매출 20% 상승이라는 결과물이 나왔다. 보안업체 슈프리마도 2017년부터 주 4.5일제를 시행한 결과 매출 72% 상승, 영업이익 51% 증가 효과가 있었다.
영국 비영리단체 ‘포데이 위크 글로벌’(4-Day Week Global)의 캐런 로우 CEO는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 이후로 삶과 일의 균형이 맞지 않는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이는 되돌릴 수 없는 추세”라며 “근무 시간 단축이 생산성 저하로 이어진다는 오해가 많지만 사실은 반대의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김대성 BNK부산은행 노조위원장은 “주 4.5일제는 고액 연봉자의 요구가 아니라 저출생, 지방소멸 등 대한민국이 직면한 복합 위기를 풀어낼 구조적 해법”이라고 말했다.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