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네팔의 봄
2010년 12월 17일 20대 튀니지 노점상 무함마드 부아지지가 중부 소도시 ‘시디 부지드’의 지방정부 청사 앞에서 분신했다. 그의 극단적 선택은 경찰의 모욕적인 단속, 청과물과 노점 설비를 모두 빼앗겨 생계가 막막해진 데에 대한 항의였다. 그가 분신한 뒤 튀니지에서는 높은 실업률, 빈부 격차 등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고 정권퇴진 운동으로 이어졌다. 당시 튀니지 대통령 일가의 불법적인 재산 축적, 정부 관리들의 부패상을 담은 외교문서도 공개돼 국민 불만이 가득 찼다. 튀니지 대통령이 거센 민중봉기에 2011년 1월 물러나면서 23년 철권통치가 막을 내렸다.
튀니지에서 불붙은 민주화 시위는 이집트, 리비아, 예멘 등으로 확산했고, 수십 년간 군림한 독재자들이 차례로 쫓겨났다. 2011년 ‘아랍의 봄’으로 불린 민주화 시위는 독재 정치, 경제적 궁핍에 대한 불만, 기득권층의 부패 등 복합적 요인에서 비롯됐다. 특히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아랍권 민중들을 뭉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젊은이들은 트위터, 페이스북 등을 활용해 거리로 모였고, 정보를 빠르게 공유하면서 시위 규모를 키웠다. 이 때문에 아랍의 봄은 ‘SNS 혁명’으로도 불린다.
지난 8일 네팔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발생해 최소 70여 명이 사망했다. 정부의 SNS 접속 차단 조치로 촉발됐지만, 누적된 경제난과 고위층의 부정부패도 원인이었다. 특히 상류층 자녀들이 SNS에 호화 생활을 과시하면서 또래 세대의 반감이 극에 달했다. Z세대인 네팔의 10, 20대 청년들이 시위를 주도한 이유다. 아시아 최빈국인 네팔의 15~24세 실업률은 20%를 넘는다. 네팔인 220만 명 이상이 해외로 나가 보내오는 돈이 GDP(국내총생산)의 3분의 1에 달한다. 외국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SNS로 가족과 소통하고, 상당수 청년이 SNS를 수익 창출 수단으로 삼아 생계를 유지한다. 이런 상황에서 네팔 정부가 지난 5일 SNS를 ‘거짓 정보의 온상’으로 지목하고 차단하자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다행히 네팔의 반정부 시위가 막을 내렸다. 지난 13일 시위대가 지지했던 네팔 최초 여성 대법원장 출신이 임시 총리로 지명됐기 때문이다. 네팔은 의회를 해산하고 내년 3월 조기 총선을 치르기로 했다. 시위는 일단락됐지만, 혼란 수습이 쉽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진정한 ‘네팔의 봄’은 올 것인가. ‘아랍의 봄’은 다시 권위주의 정권이 들어서는 등 혼란을 겪으며 짧게 끝나고 말았다. 네팔은 그 전철을 밟지 않길 바란다.
김상훈 논설위원 neato@busan.com
김상훈 논설위원 neato@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