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한인 구금 사태 놀랬나…"해외기업 투자 위축 원치않아"
전문 기술 인력 체류 보장 약속나서
외자 유치 악영향 우려 의식한 듯
다만 지지층서 실망감 커지는 모습
2기 행정부 향후 정책 방향 촉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4일(현지 시간) “나는 다른 나라나 해외 기업들이 미국에 투자하는 것을 겁먹게 하거나 의욕을 꺾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특정 국가나 기업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해당 발언을 두고 최근 미 이민 당국에 의한 대규모 한국인 구금 사태를 의식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그러나 반이민 정책에 환호했던 강성 지지층 사이에서 불만이 감지되면서 향후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행보에 관심이 쏠린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서 “우리는 그들(해외 기업)을 환영한다. 우리는 그들의 직원을 환영한다”며 “우리는 그들로부터 배울 것이며 그렇게 머지 않은 미래에 그들의 전문 영역에서 그들보다 더 잘하게 될 것이라고 기꺼이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는 최근 미 이민 당국이 조지아주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공장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한국인 317명을 포함해 475명을 체포·구금한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당초 미국 이민 당국은 한국 기업의 불법 행위를 주장했다. 한국인 근로자들이 미국에 불법적으로 입국했거나, 체류 자격을 위반한 상태에서 불법적으로 일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중 일부는 합법적인 비자 소지자도 포함돼 있던 것으로 전해지면서 미 당국의 과도한 단속에 대한 반발과 기업들의 투자 위축 우려가 동시에 나오고 있다. 이에 미국 내 제조업에 대한 외국인 투자 유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자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진화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외국 기업들이 매우 복잡한 제품, 기계, 다양한 '것들'을 만들기 위해 막대한 투자를 가지고 미국에 들어올 때, 나는 그들이 자국의 전문 인력을 일정 기간 데려와서 그들이 미국에서 점차 철수해 자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미국인들에게 매우 독특하고 복잡한 제품들을 어떻게 만드는지 훈련시켜 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가 이것을 하지 않는다면, 칩, 반도체, 컴퓨터, 선박, 열차 등과 같이 우리가 다른 나라로부터 만드는 법을 배워야 하거나 많은 경우 우리가 과거에 잘했지만 지금은 다시 배워야 하는 그런 많은 제품에 대한 막대한 투자는 애초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해외 기업이 미국에 투자할 때 트럼프 행정부로선 전문 인력의 지식 이전 역시 중요하게 보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한국인 구금 사태를 계기로 미국에 투자하는 한국 기업들 사이에서 미국에 당장 업무에 투입할 숙련도 있는 기술자가 없다는 지적이 제기된 데 대한 반박 차원으로도 읽힌다.
이번 트럼프 대통령 글은 자신의 반이민 정책에 동조해온 강성 지지층과, 최근 한국인 근로자 300여 명 구금 사태를 우려스럽게 보는 한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에 동시에 보내는 메시지로 풀이된다. 지지층에 전문기술을 가진 외국 인력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미국의 제조업 기반 재건을 이룰 수 없는 현실을 설명하는 동시에, 한국을 비롯한 각국의 대미투자 기업들에는 전문 기술 인력의 미국 체류를 보장하겠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강성 지지층에서는 불법체류자에 대한 대규모 단속과 추방을 약속한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 복귀한 뒤 기대에 못 미치는 모습을 보인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 등 이민 노동력 외에도 유학생 문제에 대해선 조심스러운 접근법을 보이는 까닭이다.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지난 5월 “중국 유학생 비자를 공격적으로 취소하겠다”면서 심사까지 강화하겠다고 천명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60만 명의 중국 유학생을 받겠다고 밝힌 상태다.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진영을 대표하는 마조리 테일러(공화·조지아) 하원의원은 X(옛 트위터)에 “중국 공산당에 충성할지 모르는 60만 명의 중국 학생이 미국 대학에 다니도록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글을 올렸다. 극우 인플루언서 로라 루머도 중국 유학생을 ‘공산당 스파이’로 규정하면서 비자 발급 반대 입장을 천명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이 바뀐 것이 아니라는 분석도 제기한다. 보수성향 싱크탱크 케이토연구소의 이민 분야 책임자 데이비드 비어는 “트럼프 대통령은 강경한 수사를 사용하지만, 경제적 관점에서 반드시 필요한 요소에 대해선 어느 정도 열린 입장”이라고 지적했다.
사업가 출신인 트럼프 대통령은 외국인 노동자에 대해선 비교적 실용적인 시각을 지녔기 때문에 ‘모든 노동력을 미국인으로 교체하자’ 식의 강성 지지층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다만 백악관 공보담당 애비게일 잭슨은 “트럼프 대통령은 이민 정책에 대해 매우 일관된 입장을 취해왔다”며 “불법체류자는 누구나 추방 대상이지만, 우선순위는 미국 사회를 위협하는 범죄자들”이라고 밝혔다.
이은철 기자 euncheo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