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미 '투자 수익 90% 내놓으라' 압박, 총력 다해 국익 지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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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 수표식 요구 한미 '윈윈' 도움 안 돼
제조업 부흥 한국 역할로 대안 제시해야

미국 현지에서 한미 관세협상 관련 후속 협의를 한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14일 오전 영종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현지에서 한미 관세협상 관련 후속 협의를 한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14일 오전 영종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과 미국의 관세 후속 협상이 중대 고비를 맞고 있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미국 뉴욕에서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과 만나 한국의 대미 투자 방식을 조율했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미국 측이 투자처를 정하고, 한국은 ‘현찰’을 납입하는 일방적인 방식을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 장관은 14일 귀국하면서 “양자 간 협의가 진행 중인 상황”이라며 말을 아꼈지만 협상이 공전을 거듭하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미국의 백지 수표식 압박은 한국의 외환 보유고와 경제 규모로 볼 때 수용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국익이 걸린 문제다. 성급한 타결은 금물이다. ‘윈윈’할 수 있는 방안 도출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한미 통상 협상에서 미국은 직접 투자 비중을 확대하고, 투자할 곳도 스스로 결정하며, 수익의 최대 90%를 가져가는 일본식 모델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일본은 미국에 ‘백기 투항’한다는 자국 내 비판을 무릅쓰고 5500억 달러(약 765조 원) 투자 협정에 서명했다. 한국은 지난 7월 관세를 25%에서 15%로 인하하고, 3500억 달러(약 485조 원) 대미 투자를 묶어서 합의했다. 이때 한국은 보증을 통한 간접 투자와, 사업성 평가에 기반한 민간 중심 투자 방식을 후속 협상에서 논의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미국 측이 ‘일본식 수용, 아니면 관세 25%’라는 양자택일을 압박하고 나서면서 협상은 미궁 속에 빠져들고 있다.

미국 대통령이 사업을 지정하면 한국은 바로 돈을 내고, 투자금 회수 뒤에는 미국이 이익의 90%를 취하는 방식은 합리성·상호성 결여도 문제지만, 한국이 재정 위기에 빠질 가능성 때문에 수긍하기 어렵다. 3500억 달러는 한국 외환 보유액의 84%, 내년 국가 예산의 72%에 해당한다. 일본처럼 기축 통화국도 아닌 한국이 자칫 외환 위기를 부를 만한 거액을 통제 장치 없이 역외에 내보낼 수는 없다. 이는 보수·진보 정권을 떠나 마찬가지다. 미국은 ‘관세 25%’ 복귀를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하고 있다. 어쩌면 ‘관세 25%’가 바닥이 아닐 수 있다는 각오가 필요한 대목이다. 침착하게 대응하면서 치밀한 대안을 만들어야 할 때다.

한국은 미국의 몰락한 제조업 부흥을 도울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국가다. 미국은 마스가(MASGA) 프로젝트나 원자력, 반도체, 자동차 분야에서 한국의 도움이 절실하다. 유럽연합(EU), 일본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국익 최우선’ 원칙을 천명했다. 그러려면 양국의 국익이 교차하는 균형점을 찾아야지 어느 한쪽이 불리한 관계는 상호 이익에 반한다는 점을 설득해야 한다. 미 제조업 협력을 카드로 활용하면서, 동시에 국내 기업의 참여 보장과 투자 구조의 다양화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통상 주권은 국익 수호의 보루이자, 국가의 신뢰 기반이기도 하다. 국가의 미래 전략을 위해 긴 호흡의 전략적 대응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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