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좋아한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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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아 소설가

꽃피는 계절은 아니지만 목련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중학교 2학년 어느 봄날. 그 시기의 나는 마치 세상의 짐을 다 짊어진 것처럼 어깨가 축 처지고 늘 시무룩해 있었다. 수학여행을 가는 날이었지만 특별히 신날 것도 없었다. 단체 활동을 즐기는 편도 아니었고, 동생을 혼자 두고 집을 비우는 것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게다가 장거리 버스 여행에 수반되는 멀미까지. 다른 아이들이 버스 안에서 잔뜩 들뜬 채 시끄럽게 웃고 떠들 때 나는 눈을 감고 있거나 창밖 먼 곳을 응시했다. 그러다 마이크가 돌기 시작했고 버스 안은 순식간에 노래방 분위기가 되었다. 서태지, 노이즈, 듀스의 노래가 생기발랄한 여중생들의 목소리를 통해 들려왔다. 나는 더욱 이방인이 되어가는 것만 같았다. 한껏 흥이 오른 분위기 속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샘도 노래 하나 하세요!” 나는 당연히 선생님이 거절할 거라고 생각했다. 제안을 한 아이도 함께 부추기던 아이들도 별 기대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중년 여성이던 담임 선생님은 늘 무표정하거나 조금 화난 얼굴로 진지하게 수업만 하던 국사 교사였고, 아이들에게 전혀 인기가 없었으며, 노래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멀어보였기 때문이다.

꽃이 지고 초록 잎이 빛나고

바람에 흔들리고 추위를 견디는,

한 존재가 품은 모든 계절

그런데 버스 맨 앞좌석에 앉아 있던 선생님이 일어나더니 마이크를 받았다. “노래를 잘 못하는데… 그래도 오늘은 수학여행 가는 날이니까 한 번 해볼게. 제목은 하얀 목련.” 그런 모습이 의외였기에 아이들 모두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다. 그러나 선생님이 막상 노래를 시작하자 아이들은 키득거리기 시작했고 곧이어 장난을 치거나 딴청을 부렸다. 선생님이 미리 말했던 것처럼 가창 실력도 별로였고, 그때까지 아이들이 잔뜩 띄워놓았던 신나는 분위기를 완전히 가라앉히는 노래였기 때문이다. 선생님의 노래가 모두 끝나자 아이들은 형식적인 환호성과 박수를 보낸 후 다시 댄스곡을 이어 부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는 선생님이 아무런 기교도 없이 불렀던 그 노래에 이상하게 마음이 끌렸고, ‘하얀 목련이 진다’라는 마지막 구절을 읊조리듯 내뱉을 때의 선생님 표정이 좋았다. 평소 수업 시간에는 볼 수 없었던 수줍은 미소, 아련한 눈빛. 수학여행을 다녀온 뒤에 나는 교정에 핀 목련을 유심히 보기 시작했고, 그 하얗고 우아한 꽃이 마냥 좋아져서 화단을 자주 서성거렸다.

얼마 후 나는 전학을 갔기 때문에 선생님을 다시 볼 수는 없었는데, 그 후로도 하얀 목련을 보면 선생님의 그 표정이 떠오르곤 했다. 어딘가에 숨겨져 있던 표정. 혹은, 언제든 볼 수 있었는데 보려고 하지 않았던 표정. 영원히 못 보고 지나칠 뻔했던 어떤 순간.

지금도 나는 목련을 좋아해서, 봄에 목련이 피면 넋을 놓고 바라볼 때가 많다. 낮에는 파란 하늘에 박힌 진주처럼, 밤에는 까만 하늘을 밝히는 알전구처럼, 화사하되 소란하지 않게 빛나는 꽃송이. 그 하얀 꽃송이가 툭툭 떨어져 버리면 괜히 서글프고 아쉽다. 그런데 얼마 전 SNS에서 목련 잎을 찍은 짧은 영상을 보게 되었다. 햇살을 받은 목련 잎이 반짝거리며 바람에 가볍게 흔들리는 영상이었다. 목련 잎이 이렇게 아름다웠구나 하고 감탄하다가, 문득 내가 잎을 제대로 바라본 적이 있던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목련을 그렇게 좋아한다면서 꽃이 지고 나면 나무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꽃이 진 자리의 흔적, 넓고 둥그런 초록 잎이 뜨거운 햇살 아래 빛나는 시간, 그 잎들의 색이 바래가며 가을바람에 흔들리다 한 장씩 낙하하는 장면, 그리고 앙상한 가지로 겨울을 견디는 모습. 그런 순간이 모두 목련의 생을 이루는 장면들이었는데, 목련을 좋아한다면서 꽃만 봤다. 좋아한다는 말이 그렇게 가벼운 거였나 싶어, 잎에게도 가지에게도 뿌리에게도 미안했다. 꽃이 없는 이 계절의 목련 나무를 바라보면서, 꽃이 보이지 않아도 여전히 너를 좋아한다고, 이제는 말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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