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균 칼럼] 적자 부산신항, 북극항로 시대 경쟁력 있나
대기자
북극항로 정책에 부산항 기대 높아
새 국제 항로의 거점 항만 역할 가능
주축 부산신항 물동량 늘어도 적자
운영사 난립·하역료 출혈 경쟁 때문
운영사 통폐합으로 경쟁력 높이길
수익성 제고해야 허브항 의미 있어
지구온난화로 북극의 해빙이 가속화하자 미국과 중국, 러시아 등을 중심으로 북극항로 개척을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인도양을 경유하는 현행 동아시아와 유럽 간 국제 항로보다 선박 운항 길이가 훨씬 짧은 북극항로가 새로운 상업 항로로 부상할 경우 세계 무역 패권을 선점할 목적에서다. 이재명 정부가 지난달 13일 ‘북극항로 시대를 주도하는 K해양강국’을 국정과제로 선정해 경쟁에 나서기로 한 것은 미래를 내다본 시의적절한 선택이다.
부산항이 기대에 부풀고 있다. 북극항로가 세계의 간선 항로로 활성화되면 부산항은 이 바닷길의 출발지이자 도착지로 기능하면서 아시아와 유럽·미주를 연결하는 거점 항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동북아 물류 중심항 지위에 있는 부산항이 북극항로를 통해 세계 굴지의 메가 허브항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게다. 최근 부산항을 북극항로의 해운·물류 중심지로 키우는 대응 전략과 우리나라의 북극항로 개척 방안 등이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어 고무적이다. 1876년 국내 최초의 국제 무역항과 근대식 항만으로 출발한 부산항이 개항 150년 만에 대도약을 위한 전환점을 맞이한 셈이다.
부산항이 북극항로 시대에 대비하고 글로벌 메가 허브항이 되려면 무엇보다 체질 개선이 시급하다. 그간의 물동량 중심 양적 성장에 이어 이제는 수익을 내는 질적 성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부산항은 지난해 사상 최대인 2440만TEU(1TEU는 길이 6m 컨테이너 1개)의 컨테이너 물량을 처리해 세계 7위 자리를 지켰다. 이는 2023년 2315만TEU에 비해 5.4% 늘어난 수치다. 지난해 부산항 전체 물동량 중 환적화물은 전년보다 9% 증가한 1350만TEU로 세계 2위다. 부산항은 부산항만공사(BPA)와 터미널운영사들의 물동량 유치 노력에 힘입어 매년 꾸준한 성장세를 보인다.
세계 7위 컨테이너항, 2위 환적항. 부산항은 이 같은 자랑스러운 외형과 달리 적자 항만이란 속사정이 있다. 부산항 전체 물동량의 77%가량을 담당한 부산신항은 충격적으로 지난해 500억 원대 적자를 기록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부산신항 7개 터미널운영사의 2024년도 합산 순이익은 1173억 원, 순손실은 1713억 원으로 나타났다. 전체 적자 규모는 540억 원에 달한다. 3개 국내 터미널운영사의 순손실 폭이 매우 큰 탓이다. 빛 좋은 개살구와 다름없는 상황이다.
터미널운영사의 난립과 과당 경쟁이 적자의 주된 원인이다. 7개 터미널운영사가 부산신항 23개 선석을 나눠 운영하며 한정된 물동량을 서로 유치하려고 낮은 가격에 하역료 계약을 하는 등 덤핑 경쟁을 일삼는 영향이다. 새 부두 개장 시 제살 깎아먹는 출혈 경쟁이 더 심해지기 일쑤다. 부산항 하역료는 1TEU당 4만~5만 원인데, 지난 3월 일부 터미널운영사는 3만 5000원을 받기도 했다. 미국 LA항 40만 원, 독일 함부르크항과 홍콩항 26만 원, 중국 상하이항 15만 원, 톈진항 13만 원 등에 비하면 헐값 수준이다. 부산항의 수익성이 해외 경쟁 항만들보다 현저히 낮은 이유다.
문제는 이뿐만 아니다. 터미널운영사들이 수익 만회를 위해 하역시설을 풀가동하는 바람에 중국 항만들보다 심한 체선·체화 현상을 빚어 선사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높은 가동률은 항만 내 안전사고 위험도 높인다. 배를 바꿔 싣는 환적화물은 같은 부두나 인접 부두가 아닌 동떨어진 부두로 옮겨져 환적되는 경우가 많아 항만 경쟁력을 저하시킨다. 경영난에 시달리는 일부 국내 터미널운영사의 지분이 외국의 글로벌 터미널운영사(GTO)에 매각됐는가 하면 앞으로도 그럴 우려가 있어 우리 항만당국의 장악력을 떨어트린다.
부산항이 이런 상태로는 북극항로의 허브항이 되는 데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설사 허브항으로 자리 잡더라도 수익과 직결되는 높은 생산성을 기대할 수 없다. 해양수산부와 BPA가 실속 없이 비정상적으로 낮은 부산항 하역료 체계를 바로잡아 수익성을 높여야 한다. 이를 부산항이 북극항로 시대를 대비하는 주요 과제의 하나로 정해 해결해야 항만 경쟁력이 커질 테다.
근본적인 대책으로는 부산신항의 7개 국내외 터미널운영사 통폐합이 꼽힌다. 지분 조정, 인센티브 제공, 임대기간 연장 불허 등으로 각사를 적극 설득해 외국 지분과 운영사 수를 줄이는 게 급선무다. 부산항이 경쟁 항만들처럼 자국 기업 지분 51% 이상, 소수 운영사 체제로 바뀌면 효율적이고 원활한 운영은 물론 흑자 달성이 가능할 것이다. 고수익과 고부가가치 창출은 부산항 관리 역할에 그치고 있는 BPA가 싱가포르항만공사(PSA), 두바이포트월드(DPW) 같은 세계적인 GTO로 클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오는 2040년까지 총 21개 선석 규모로 단계적으로 개장할 진해신항의 터미널운영사를 선정할 때는 부산신항의 지금 모습을 반면교사로 삼을 일이다.
강병균 대기자 kb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