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을숙도 벽화
성수자 (1953~)
연으로 날아올라
철새의 눈높이로 날아올라
아득한 희망의 부표로 떨어져 내리는
강과 바다의 의식
흘러온 날들의 묶음만큼 갈대밭이 자라고
자라온 갈대밭 머리 위로
잘 말린 햇살이 탄주하는 가을
마침내 물이 뿌리를 나누어 주는 곳
실한 강의 씨를 바다에 털어 넣고
손사래 치며 흘러온 시간의 끈을 풀어
완주한 강의 흐름 위로 노을이 걸리며
강바닥을 두드리는 물의 득음
세상은 이렇게 어울리는 것이라고
풀숲에 숨죽이던 바람이 걸어 나와
물비늘을 쓰다듬는 강의 수화
거대한 강의 한 생애를 거는
을숙도 벽화
시집 〈푸른 힘을 당기다〉 (2021) 중에서
강은 바다가 되기 위해 흐르는 걸까요. 하구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강은 사연 많은 생을 살아온 누군가인 것만 같고 하구는 그들이 닿고 싶었던 종착지인 것만 같습니다. 수고했노라 품어주는 넓은 가슴 같은 바다. 그렇게 민물과 짠물이 만나 주고받는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시인의 말처럼 세상은 그렇게 어울리는 것인가 생각하게 됩니다. 하굿둑이 생기면서 갈대밭과 습지가 예전만 못하지만 탐방로 주변에는 아직도 칠게나 엽낭게들이 모래구슬을 밀어올리는 생태계의 현장을 보여줍니다. 태풍이 오면 옮겨지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는 모래톱 사이에서, 다음 비행을 위해 잠시 쉬어가는 철새들 사이에서 넓적부리도요를 찾던 을숙도의 가을. 바다에 이르러 자신의 이름을 버린다는 강처럼 자연이 되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신정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