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식당 업주 울린 ‘노쇼 사기’ 왜 검거 못하나
단순 예약 부도 아닌 돈 뜯는 조직 범죄
올해 1~7월 2892건 414억 피해 발생
보이스피싱 형태 진화 검거율 고작 0.7%
통신사기법서 제외 즉각적 대응 어려워
노쇼(No-Show)는 식당 등에 예약을 한 고객이 예약 취소를 하지 않은 채 제시간에 나타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노쇼로 인한 피해를 호소하는 소상공인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이어진다. 그런데 요즘은 음식점 등을 운영하는 소상공인들로부터 돈을 뜯어내는 ‘노쇼 사기’까지 기승을 부린다. ‘노쇼 사기’는 기업이나 공공기관 관계자를 사칭, 전화나 메신저로 음식점 등에 예약을 하면서 해당 가게에서 취급하지 않은 고가의 음식이나 주류를 특정 업체에서 미리 구매해 준비하도록 유도한 뒤 잠적하는 것이 일반적인 수법이다. 이 과정에서 음식점 점주 등 소상공인들은 예약 고객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특정 업체에 돈을 송금했다가 낭패를 본다. 단순한 노쇼와 완전히 다른 명백한 사기 범죄인 것이다. 하지만 ‘노쇼 사기’ 검거율은 1%에도 못 미친다. 검거율이 이렇게까지 낮은 것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 더욱이 피해자들은 대부분 영세한 소상공인들이다. 도대체 무슨 이유일까.
■ 진화하는 ‘노쇼 사기’
일반적인 노쇼의 의미는 예약한 고객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예약 부도’라고 할 수 있다. 통상적인 노쇼의 사유는 악감정에 의한 피해 유발 의도, 장난 또는 고객의 변심, 잊어버림 등이다. 노쇼가 발생하면 영세업체들은 그 시간에 다른 고객을 받지 못하거나 음식 재료를 과다하게 준비하는 등에 따른 피해를 본다.
하지만 ‘노쇼 사기’ 가해자들은 해당 업체를 적극적으로 기망해 금전적인 이득을 취하려는 고의성을 갖고 있다. 더욱이 이 범죄의 피해자는 대부분 영세한 소상공인인 경우가 많다. 더욱이 최근 깊어진 불황 때문에 소상공인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노쇼 사기’는 소상공인들의 의지를 꺾는 악랄한 범죄라고 할 수 있다.
지난 6월 부산 서구의 한 중식당에 한 남성이 전화를 걸어왔다. 이 남성은 다음 날 오후 2시까지 24인분 음식과 함께 이 식당에 없는 고가의 술 6병을 준비해달라고 예약했다. 특히 술은 자신이 알려주는 주류 업체를 통해 주문해 달라고 요청했다. 업주는 남성이 지정한 거래 업체에서 술을 구입하고 음식을 마련했지만 단체 손님은 나타나지 않았다. 전화로 예약한 남성도 연락이 두절됐다.
지난 5월 울산의 한 고깃집 업주는 유명 배우가 방어진에서 촬영을 마친 뒤 단체 회식을 한다며 30여 명 분의 음식을 준비해달라는 예약 전화를 받았다. 예약자는 배우가 원하는 와인이 있다며 특정 업체까지 지정해 8병을 구매해 준비해달라고 요청했다. 예약자가 지정한 와인을 구입하려면 1병에 90만 원, 총 720만 원이 필요했다. 업주는 자신이 감당하기에 무리한 주문이어서 와인을 사둘 수 없다고 말하자 예약자는 일방적으로 예약을 취소했다. 업주가 해당 배우의 소속사에 문의한 결과 연예인을 사칭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5월 전남의 한 숙박업소 업주는 자신을 '대선 후보 캠프 관계자'라고 소개한 인물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고흥 지역에서 선거운동하는데 방 15개를 예약하고 싶다"며 예약을 진행했다. 예약자는 이튿날 다시 숙박업소에 전화해 "선거보조금을 현금으로 받은 탓에 선거운동원들의 도시락 대금을 결제하지 못하고 있으니, 도시락 대금을 대신 결제해주면 숙박비 결제 시 함께 지급하겠다"고 제안했다. 곧이어 '도시락 납품 업체' 역할을 맡은 또 다른 사람이 숙박업소에 "도시락 주문이 들어온 것이 사실이니, 840만 원을 주면 배달해주겠다"고 했다. 예약자의 말을 믿은 업주는 송금한 돈을 떼인 뒤에야 사기라는 것을 알았다. 지난 4월 강릉에서는 교도관 행세를 한 예약자에게 속아 자영업자 5명이 총 6355만 원의 피해를 입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자영업자들에게 예약을 하면서 방문 당일 줄테니 방검복 등을 대신 구매해달라고 요구하는 수법이었다.
울산과 전남, 강릉 등 전국에서 발생한 이 사건들은 최근 급증하는 ‘노쇼 사기’의 전형을 보여준다. ‘노쇼 사기’ 가해자들은 공무원, 정치 관계자 등 신뢰를 주는 직함을 사칭해 예약을 잡고 고가의 물품 구매를 유도, 돈을 송금받은 뒤 잠적한다. 한 명의 고객이 아쉬운 소상공인들의 심리를 이용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보이스피싱이나 스미싱에 못지 않은 교묘한 범죄 양태를 보인다. 심지어 공공기관의 직인이 찍힌 위조된 공문서를 범죄 도구로 활용하는 사례도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소상공인들의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 커지는 피해, 미미한 검거율
더불어민주당 박정현 국회의원이 최근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시도경찰청별 노쇼 사기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5년 1월부터 7월까지 총 2892 건의 ‘노쇼 사기’가 발생했다. 피해액만 414억 원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별로는 부산이 110건에 피해액 10억 원, 울산이 99건에 피해액 22억 원, 경남이 117건에 피해액 18억 원 등이다. 부울경 전체를 합하면 올 들어 7개월 만에 총 326건에 50억 원의 피해가 발생했다. 피해자가 모두 소상공인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노쇼 사기’가 불황의 늪에 빠진 자영업자들의 희망까지 무너뜨리는 심각한 부작용을 유발 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제는 검거율이다. 이렇게 심각한 피해가 발생하고 있지만 검거된 건수는 22건으로 전체 0.7%에 불과하다. 부산과 울산, 서울, 인천, 세종, 경기 북부, 충남, 경북, 제주의 검거율은 0%를 기록했다. 신종 ‘노쇼 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검거는 사실상 거의 불가능한 상황인 것이다.
■ ‘노쇼 사기’ 왜 검거 못하는가?
흔히 ‘노쇼 사기’를 예약 부도 사기 정도로 치부한다. 하지만 ‘노쇼 사기’는 일반의 생각과 달리 굉장히 지능적이면서도 조직적인 범죄 양상을 보인다. ‘노쇼 사기’ 조직은 통상 전화를 거는 예약자, 업주들이 예약자의 부탁을 받아 대리 구매하는 업체 관계자 역할을 하는 공범, 업주들로부터 돈을 송금받을 통장 계좌를 제공하고 입금된 돈을 주범에게 전달하는 현금 수거책 등으로 역할이 분담되어 있다.
더욱이 현금 수거책들은 피해자들에게 송금 받은 돈으로 코인 등을 구매해 주범의 해외 환전소 지갑으로 송금한다. 사실상 추적이 어려운 것이다. 특히 국내에 있는 현금 수거책을 잡았다고 하더라도 이들은 주범의 정체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수고료를 받기 위해 대포 통장 등을 지급한 단순 가담자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앞서 전남에서 발생한 도시락 대금 사기 사건에 현금 수거책으로 가담했다가 체포된 피의자는 사기 조직이 범죄를 실행하기 이틀 전에 '코인 거래가 가능한 계좌를 제공해 불법 수익금을 입금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면 수당을 벌 수 있다'는 제안을 받고 범행에 가담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노쇼 사기’는 대포 통장 소지자들을 모집하는 보이스피싱 조직들의 범죄 행태와 매우 흡사하다. 일각에서는 노쇼 사기범들이 해외에 근거지를 둔 보이스피싱 조직에서 파생된 범죄조직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노쇼 사기’가 보이스피싱의 진화된 형태일 수 있다는 추정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노쇼 사기’에 대한 대처는 소극적이다. 피해 신고를 받고 경찰이 사건을 수사할 즈음이면 이미 피해금은 해외 주범의 손에 넘어갔을 가능성이 높다. 주범들은 기존 보이스피싱 조직들처럼 법 사각지대인 해외에 체류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보니 한국 경찰이 주범 등 사기 조직원들을 모두 검거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보이스피싱 범죄 검거가 쉽지 않은 것과 같은 이유인 것이다.
특히 현행 통신사기피해환급법은 ‘재화의 공급 또는 용역의 제공 등을 가장한 행위’는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자영업자 등 소상공인들이 사기라는 것을 깨닫고 사기 범죄에 이용된 계좌에 대한 지급 정지, 피해금 환급 등을 하려고 해도 ‘노쇼 사기’는 법이 정하는 통신사기 규정에서 제외되어 있는 것이다. 법 개정을 통해 피해금을 신속하게 회수하고 사기 계좌를 동결시킬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통장을 제공해 현금 수거책 역할을 했거나 공공기관 종사자를 사칭했을 경우 가중 처벌하는 제도 마련도 검토해야 한다.
경찰의 인식 전환도 필요하다. 신고 접수 즉시 발빠르게 대응하는 수사 시스템을 구축한 뒤 한층 적극적인 국내외 공조 수사를 통해 ‘노쇼 사기’ 조직을 뿌리뽑아야 한다. ‘노쇼 사기’에 대해 경찰을 비롯한 범정부적인 대응이 필요한 것이다. 피해 예방을 위해 소상공인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도 이뤄져야 한다. ‘노쇼 사기’ 대응 매뉴얼을 대대적으로 배포해 피해가 지금처럼 급증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사기범들이 사칭하는 직책의 진위 여부를 신속하게 확인할 수 있는 단일 창구를 마련하는 것도 시급하다.
천영철 논설위원 cyc@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