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동네책방과 독서모임의 가치
이국환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제주 구좌읍 종달리에 ‘소심한책방’이란 이름의 동네책방이 있다. 그곳에 독서모임이 있는데 모임 이름이 ‘구좌 당근껍질파이 북클럽’이다. 오래전 나는 연구년을 맞아 제주에서 일 년을 보냈다. 도서관 옆에 집을 구해 오전은 제주 바닷가를 걷고 오후엔 도서관에서 책 읽고 글을 쓰며, 저녁이면 노을 속을 걸어 아내와 집으로 돌아오는 행복한 나날이었다.
독서모임 이름 덕분에 나는 오랜만에 제주 종달리를 떠올렸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책 중에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이 있다. 워싱턴 포스트가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바치는 달콤하고 정감 넘치는 찬가”라고 했던 책, 나는 이 책을 너무 사랑하여 주위에 권하고, 이 책을 제재로 책으로 만나는 인연을 뜻하는 ‘책연(冊緣)’이란 글을 쓰기도 했다. 영국 채널 제도 건지섬의 감자껍질파이가 제주 구좌읍에서 당근껍질파이가 되었으니, 책 인연이 바다를 사뿐히 건넜다.
같은 책 사랑은 생각·감정 공유
전국 각지 동네책방 존재 가치
위로·인연 주고 받는 독서 모임
내가 사랑하는 책을 사랑하는 이는 소중한 ‘책연’이다. 독서모임은 이러한 책연을 전제로 한다. 같은 책을 사랑한다는 건 생각과 감정을 깊이 공유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공독(共讀)은 나이와 성별, 직업의 경계를 넘어 사람 사이의 벽을 허물고 정서적 공동체를 형성한다. 종달리 ‘소심한책방’이 시, 소설, 수필로 나누어 문학 창작 프로그램도 진행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듣기와 말하기가 일련의 행위이듯 읽기와 쓰기도 마찬가지다. 독서는 저자와 독자의 대화이며 대화는 응답을 전제하기에, 쓰기로 나아가지 않고서는 독서의 여정이 마무리될 수 없다.
소심한책방의 소개말을 보면, 이 책방은 두 주인장의 편애로 골라둔 책들이 주를 이룰지 모르며, “우리 취향을 이해해 줄 분들이 꼭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책방을 운영한다고 한다. 사랑의 속성은 편애에 가깝다. 사랑은 결국 특정 대상을 향해 치우치고 기우는 마음이니, 편애가 아닌 사랑은 신의 영역에 속할 듯하다. 편애와 취향이야말로 거대 자본이 장악한 이 시대에 동네책방의 존재 가치일 것이다. 전국 각지에 동네책방이 자리 잡고 있어 저마다 취향의 공동체를 꾸려간다면, 우리 삶은 지금보다 다채롭고 풍요롭지 않을까.
근래 무카이 가즈미의 〈다정한 나의 30년 친구, 독서회〉를 읽었다. 학교 도서관 사서이자 번역가인 저자가 30여 년 독서모임에 참여한 경험을 담았는데, 책에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이야기가 나온다. 이렇게 책이 책을 부르고, 호명된 책을 반갑게 마중하며 독서의 길은 이어진다. 독서모임의 가치는 혼자서는 선택하거나 감당하기 어려운 책을 공독할 때 빛난다. 책 속 모임에서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무려 1년 반 동안 함께 읽었다는 말에 수긍하였다. 나는 이 책을 읽다 포기했는데, 아마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었다면 완독하지 않았을까 싶다.
연구년 때 제주 도서관에 앉아 읽으며 쓴 글을 중심으로 책을 출간했다. 운 좋게도 책은 독자의 사랑을 넘치게 받았고, 여러 기관과 매체에 추천도서로 소개된 덕분에 동네책방의 초대를 받았다. 일 년 동안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 성인이 다수라는 통계에도, 어둠 속 반딧불처럼 강릉, 인천, 홍성, 익산, 전주, 김해, 통영 등지에서 만난 독자들은 동네책방에 소담하게 모여 책으로 소통하고 있었다. 부산에서도 연산동 ‘카프카의밤’, 용호동 ‘미우서재’ 등 동네책방에서 독자와 함께한 기억이 선연하다.
기술의 발달로 세상은 갈수록 편리하지만, 우리 마음은 점점 각박하기만 하다. 책은 인류 가장 오랜 미디어로,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가장 적합한 매체이다. ‘비블리오테라피(Bibliotheraphy)’라는 용어처럼 책으로 우리는 위로받는다. 위로는 나만 힘든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손님처럼 찾아오기도 한다. 나를 위로해 주는 책이 있고 그 책을 인연으로 모인 사람들이 서로 위로하고 위로받는다. 동네책방과 독서모임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