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창의 클래식 내비게이터] 에이미 비치, 미국 여성 최초의 교향곡 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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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평론가

에이미 비치. 위키미디어 에이미 비치. 위키미디어

19세기 중반에 태어나 20세기 초반까지 활동한 여성 작곡가 중에는 프랑스의 멜라니 보니스, 릴리 불랑제, 그리고 미국의 에이미 비치, 플로렌스 프라이스 같은 탁월한 인물이 있었다. 1867년 9월 5일, 뉴햄프셔에서 태어난 에이미 비치(Amy Beach, ~1944)의 원래 이름은 에이미 마시 체니였다. 피아니스트이자 성악가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음악을 접하며 자랐다.

그녀 역시 모차르트나 생상스 같은 천재들에게 따라다니는 전설적인 경력을 가지고 있다. 세 살 때 악보를 보고, 다섯 살에 왈츠를 작곡했다고 하니 말이다. 피아노 실력도 마찬가지였다. 8세부터 보스턴에서 작곡과 피아노를 배웠고, 16세에 직업 피아니스트가 되었으며, 18세인 1885년 보스턴심포니 협연으로 모셀레스의 피아노 협주곡으로 공식 데뷔했다.

그러나 스물네 살 연상 외과 의사와 결혼한 후에는 혼자서 작곡만 할 수 있었다. 남편은 아내가 대중 앞에서 연주하는 것을 매우 싫어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남편은 1년에 2회로 연주회를 제한했고, 다른 사람과 같이 공부하거나 레슨을 받을 수 없다는 단서 조항을 걸었다. 말도 안 되는 조항이지만 당시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그 정도로 편협했다. 그녀는 거의 독학으로 작곡 실력을 쌓다가, 1890년 보스턴에서 미사곡을 발표하면서 음악계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에이미 비치 : 로망스 작품23 - 제네바 루이스(바이올린) 에이미 비치 : 로망스 작품23 - 제네바 루이스(바이올린)

29세 되던 1896년에는 ‘게일 교향곡’을 발표해서 보스턴심포니가 초연했다. 당시에 미국에 와있던 드보르자크가 흑인 영가와 인디언 선율을 차용하여 9번 교향곡 ‘신세계에서’를 선보이자, 비치는 “나는 아일랜드 이민자의 후손이니 아일랜드 선율로 미국 교향곡을 쓰겠다”라고 하며 게일 교향곡을 완성했다. 이 곡은 미국 여성 작곡가로선 최초의 교향곡이었다.

1910년에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본격적으로 피아니스트 활동을 시작했고 작품도 왕성하게 발표했다. 1925년엔 미국 여성 작곡가협회 초대 회장이 되었다. 그녀는 150여 곡의 가곡을 남겼을 정도로 시와 노래에 대한 사랑이 지극했다. 그 외에 교향곡, 협주곡, 실내악, 오페라, 피아노 독주곡 등 다양한 구성으로 300여 곡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오늘날 가장 자주 무대에 오르는 에이미 비치의 작품은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로망스 작품23’일 것이다. 26세이던 1893년에 만든 3부 형식의 곡이다. 부드러운 피아노의 화음 위에 바이올린이 조용히 고백을 시작하다가 점차 감정이 고조된다. 격정을 토로한 후 다시 감정을 가라앉히며 포옹으로 마무리한다. 짧지만 아름다운 한편의 낭만적 서정시를 읽은 듯, 따뜻한 울림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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