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부산이 '국가연구소' 유치에 사활을 거는 까닭은
김영부 부산과학기술고등교육진흥원장·한국과총 부울연합회 부회장
시대와 지역을 불문하고, 도시의 성장과 기능을 지탱하는 핵심 축 중 하나는 대학이다. 대학은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니라, 지식과 기술을 창출하고 인재를 길러내며, 산업과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온 중심지였다. 이러한 대학의 기능을 지역 중심으로 보다 강화하기 위해, 정부는 ‘대학 생존과 성장’ 중심의 지원 방식에서 벗어나, 대학이 지역사회 발전을 주도하는 새로운 체계로 정책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올해부터 본격 시행되고 있는 지역주도 대학지원체계, 즉 라이즈(RISE) 사업이다.
이 사업은 박형준 시장의 구상에서 출발했다. 민선 8기 출범 후 박 시장은 지자체 중심의 새로운 산학협력 모델로 ‘지산학(地産學)’ 개념을 도입했고, 전국 최초로 ‘지산학협력센터’를 설치해 전국적 주목을 받았다. 이 시도가 중앙정부 정책으로 설계되어, 2023년 부산이 라이즈 시범지역으로 선정되었고, 올해부터 전국 확대 시행에 들어갔다.
대학 세계 최초·최고 연구사업 지원
산업구조·도시 경쟁력 혁신의 기회
부산대 초저온연구소 최종 후보에
북극항로 개척에 필요한 핵심 기술
부울경 힘 모아 최종 선정 이끌어야
시는 대학의 역할과 중요성을 잘 알고 있기에 대학이 주도하는 집단연구사업을 대학 자체 과제로 넘기지 않고, 지역 차원에서 전폭적으로 지원하며 함께 유치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대학이 지역 과학기술 생태계를 선도하고 새로운 산업 기반을 조성하는 흐름 속에서, 시와 부산과학기술고등교육진흥원(비스텝)이 ‘국가연구소(NRL 2.0)’ 유치에 사활을 거는 이유는 명확하다. 이는 단순한 연구시설 확보가 아니라, 부산의 미래 산업구조와 도시 경쟁력을 혁신하기 위한 전략적 결단이다.
국가연구소(NRL 2.0)는 올해 처음 추진되는 국가 대형 연구사업으로 대학이 세계 최초·최고 수준의 연구를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부산대 ‘초저온연구소’가 전국 13개 예비 대상 중 한 곳으로 선정되었으며, 부울경 권역에서는 유일하다. 지역을 대표하는 국가연구소로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이러한 노력은 지역균형발전 차원에서도 매우 유의미하다. 국가의 성장을 위해서는 특정 지역의 집중이 아닌, 전국 동반 성장이 이루어져야 하고 그 중심축이 있어야 한다. 정부의 국가균형발전론인 ‘5극 3특’ 체제와 맞물려 남부권을 축으로 한 균형 잡힌 국가 발전 모델이 요구된다. 그리고 그 중심축에 부산이 있다. 부산은 부울경 전체를 아우르며 남부권 성장을 선도하는 도시다. 국가연구소 유치는 이러한 지역적 위상에 걸맞은 과학기술 역량을 갖추는 결정적 전환점이 될 것이다. 지역 산업 수요에 기반한 연구, 그에 대응하는 전문 인재 양성 체계 구축은 부산이 미래 먹거리를 창출하고 지속 가능한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있어 필수 요소다.
물론 지금은 겨우 5부 능선을 넘은 상태다. 예비 선정은 출발선일 뿐, 이 중 단 4곳만이 이달 내 최종 국가연구소로 확정된다. 부산이 이 관문을 통과하려면 연구소와 대학은 물론, 지자체, 산업계, 시민사회가 긴밀하게 협력하여, 연구 계획을 넘어 국가정책 및 산업 전략과의 연계를 어떻게 실현할지를 분명히 보여주어야 한다.
부산대 초저온연구소는 그에 걸맞은 비전과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액체수소 활용을 통한 에너지 안보 기술 및 산업을 지원할 극저온 환경 플랫폼 구축, 세계 정상급 연구기관과의 협업, 후속 학문 세대가 정주할 수 있는 연구 환경 등이 그 핵심이다. 특히 이 연구소가 최종 선정되면,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과 함께 추진 중인 ‘글로벌 해양허브도시’의 핵심 추진력이 된다. 초저온 기술은 북극항로와 연계된 에너지 항만 구축, 액화수소 기반 선박 운송, 해양 신산업 고도화의 기반이 된다. 부산항을 글로벌 에너지 물류거점으로 전환하는 데, 이 연구소는 명실상부한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다.
부산이 그리는 해양수도 비전은 단지 해양 물류 기능에 머무르지 않는다. 해양, 에너지, 과학기술이 융합된 새로운 글로벌 혁신도시로의 도약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단기 성과가 아닌, 지속 가능한 전략과 정책 의지가 결합한 과학기술 생태계 구축이다.
부산이 가진 역사적 자산과 기술적 미래가 결합할 때, 도시는 해양 경제의 중심지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그리고 그 출발점이 바로 ‘부산대 초저온연구소의 국가연구소 최종 선정’이다. 지금이야말로, 부산이 지역균형발전과 기술 주권의 미래를 함께 열어갈 결정적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