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신얄타회담

김상훈 논설위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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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타는 흑해에 둘러싸인 크림반도 남부의 휴양도시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역사가 교차하는 곳이다. 얄타는 1783년 오스만제국에서 러시아제국으로 편입됐으며, 19세기 말~20세기 초 러시아 작가 톨스토이와 체호프 등의 여름 별장지로 각광받았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소련에 포함됐고, 1954년 소련에서 우크라이나로 관할이 이관됐다. 이후 우크라이나의 소련 탈퇴와 소련 해체(1991),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 합병(2014),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2022∼현재) 등 복잡한 역사가 이어져 왔다.

얄타가 세계사적으로 떠오른 계기는 1945년 2월 열린 얄타회담이었다.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 처칠 영국 총리, 스탈린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나란히 앉은 사진이 유명하다. 이들은 2차 세계대전 승리에 핵심 역할을 했던 연합국 소속 3개국 정상들이었다. 이 자리에서 독일과 한반도의 분할 점령이 결정되고, 폴란드 영토가 소련에 유리하게 재조정되는 등 전후 질서가 재편됐다. 정작 관련 당사국들은 회담에서 철저히 배제돼, 강대국이 약소국의 운명을 동의 없이 재단한 역사적 사례로 남았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오는 15일(현지시간) 미국 알래스카에서 미러 정상회담을 연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뒤 3년 6개월 만에 처음 만나는 것이다. 핵심 의제는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한 영토 협상이다. 그동안 푸틴은 2014년 강제 합병한 크림반도를 비롯해 루한스크, 도네츠크, 자포리자, 헤르손 등 동부 4개 주를 러시아 땅으로 공식 인정하라고 요구해 왔다. 최근 러시아를 찾은 트럼프 대통령 특사에게 동부 돈바스 지역 2개 주인 도네츠크와 루한스크를 우크라이나가 양보하고, 도네츠크에서 군대를 철수하면 휴전하겠다고 제안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가 없는 평화 협상은 죽은 결정”이라며 반발한다. 하지만, 이 담판에 젤렌스키의 참석 여부는 불투명하다. 물론 밴스 미국 부통령이 미·러·우크라 3자 회담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지만, 젤렌스키가 참석한다고 해도 들러리에 그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당사국인 우크라이나가 배제된 채 강대국 간 외교적 담판을 통해 새 국경선을 긋는 형태로 전쟁의 끝을 맺을 수도 있는 것이다. 휴전을 넘어 전후 구도까지 좌우할 이번 알래스카회담이 80년 전 알타회담과 겹치는 이유다. 강대국의 세력권 구축 과정에서 다른 나라가 거래와 타협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국제사회의 냉혹한 힘의 논리가 서늘함을 안겨준다.

김상훈 논설위원 neato@


김상훈 논설위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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