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부산항만 노동자가 바라보는 진정한 ‘해양수도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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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훈 부산항운노조 부위원장


2005년 ‘해양수도 부산’ 선포 이후 25년 가까이 실질적 성과 없이 표류하던 부산의 해양수도 비전이, 이재명 정부의 핵심 공약인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 추진을 계기로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해사법원 설치, 북극항로 개척 거점 구축, HMM 본사 이전 등 다양한 정책 제안이 이어지는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부산항이 내실있는 성장을 통해 명실상부한 ‘해양수도’의 위상을 갖추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현장 최일선에서 부산항을 지키고 있는 항만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항만 노동자들의 시각에서 바라본 몇 가지 핵심 과제를 짚어 본다.

먼저, 항만산업의 질적 성장과 부가가치 제고다. 부산항은 화물의 컨테이너 박스화 이후 50년간 눈부신 외형적 성장을 이뤄냈다. 현재 5만t급 컨테이너 선박이 접안 할 수 있는 선석만 35개, 부두 운영사도 9개에 달한다. 이를 통해 부산항은 세계 2위 환적항, 세계 7위 컨테이너 항만으로 자리매김했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운영사 수가 지나치게 많아 선석 활용도 및 생산성이 저하되고, 개별 선석 운영과 선박 대형화에 따른 효율성 저하 등 구조적 문제가 심각하다.

특히 30년 넘게 제자리 걸음 중인 하역 요율은 가장 심각한 문제다. 지난 과거 허가제였던 정부 항만요율이 신고제로 전환되면서 운영사 간 덤핑으로 인한 출혈경쟁이 심화됐다. 세계 주요 항만과 비교했을 때, 부산항 하역 요율은 턱없이 낮다. 운영사의 이익 창출에 걸림돌인 과당경쟁은 부산항의 헐값 하역요율의 원인으로 이는 크게 보면 국부유출이라 할 수 있을 것으로, 이로 인해 하역사는 물론 부산항 항만 노동자들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부터라도 해수부의 부산시대를 맞아 항만당국의 적극적인 노력을 통해 요율을 정상화시키고, 항만산업의 부가가치를 높여야 한다.

두 번째로 항만 개발사업의 정책적 일관성이다. 자성대부두 개장 이후 전국 곳곳에서 ‘부두만 지으면 황금알을 낳는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무분별한 개발이 이어졌다. 정치권도 시민사회도 지역 경제 발전, 일자리 창출을 내세우며 한몫 거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40여 년이 지난 지금 전국의 부두 상황은 어떠한가? 그 결과, 컨테이너 부두 과잉 공급으로 효율성은 떨어지고 경쟁력은 약화됐다. 더 이상의 계획성 없는 선심성 개발은 지양하고, 항만의 백년대계를 위해 정부가 다시금 되돌아보아야 한다.

세 번째 과제는 항만 자동화 등 노사정 협의체 구성이다. 항만 자동화는 세계적 추세이고 우리나라 역시 반자동화 부두인 부산신항 5부두인 BNCT를 시작으로, 부산신항 서측에 완전자동화 부두인 동원글로벌터미널이 들어섰다. 자동화가 변화의 방향은 맞지만, 현재 시점에서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유럽 자동화 부두에 비해 우리나라 부두는 자가 물량 기반이 약하고, 선사 유치 경쟁에 의존하는 구조다. 더욱이 생산성만 보더라도, 기존 재래부두의 하버크레인이 시간당 25개 컨테이너를 처리한 데 비해 현재 부산항 완전 자동화 부두의 안벽 크레인은 말하기 부끄러운 수준이다.

부산항 노사정은 부산항 경쟁력 강화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노력해 왔다. 완전자동화로 가는 과정 또한 부산항 노사정 협의체를 구성하여 충분한 논의와 사회적 합의를 통해 고용문제 등 노사 갈등으로 인한 리스크를 사전에 방지하고 완전자동화에 따른 효율성을 제고하여 부산항 경쟁력을 극대화하는 데 노사정이 서로 협업해 나가야만 할 것이다.

네 번째 항만 하역 노동자들의 법적 지위 보장이다. 부산항 하역 노동자들은 1876년 부산항 개항 이후 150년 동안 일제 강점기, 6·25동란, IMF 외환위기 등의 수난시대를 겪는 속에서도 단 한 차례의 파업없이 국가 물류산업의 최전선을 지켜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제 1항구라는 부산항에 항만하역 노동자들을 위한 제대로 된 복지회관 하나 없으며, 법적 사각지대 속에 알바생도 받는 퇴직금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작금의 현실로, 국가 경제를 뒷받침해 온 이들이 최소한의 권리와 존엄을 지킬 수 있도록 항만 노동자들의 법적·경제적 지위를 보장할 정부 차원의 근본적 대책이 마련되어야만 한다.

단순히 이름뿐이 아닌, 해양수도 부산에 걸맞는 부산항이 되기 위해서는 위와 같은 현장 문제 해결이 우선시 되어야 할 것이다. 항만 노동자들의 노동 가치와 권리를 존중하며, 항만 산업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때 비로소 ‘해양수도 부산’은 우리 앞에 현실로 다가올 것이라 생각한다.

부산항만 노동자들은 해양수도 부산 실현을 위한 모든 노력에 동참할 준비가 되어 있다. 정부와 지자체가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정책을 추진한다면, 부산항은 세계를 선도하는 진정한 해양수도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여 반평생 부산항에 종사해 온 하역노동자의 입장에서 해양수산부의 부산시대를 맞아 작은 소망이 하나 있다면, 부산항의 모태인 북항이 현재 재개발로 인해 이전 부두 기능이 역사속으로 사라져 가고 있는 이때 그동안 북항의 역사와 함께해 온 부산항 하역노동자들의 노고를 위로하고 치하하는 마음으로 기념물 하나 정도 북항에 마련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며, 연안여객선의 뱃고동이 다시 울리는 친화적이고 활기찬 부산항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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