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샷초동맹’이 던지는 교훈…지방대학 연합과 혁신
박민원 국립창원대 총장
1866년. 일본의 근대화를 연 주춧돌 하나가 놓였다. 그 이름은 ‘샷초동맹(薩長同盟)’. 당시 일본의 유력 번(藩)이었던 사쓰마(薩摩)와 조슈(長州)가 손을 맞잡은 이 동맹은 도쿠가와 막부라는 구체제를 무너뜨리고,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의 기폭제가 됐다.
사적 이해와 정치 노선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사쓰마와 조슈는 일본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공동의 위기의식과 미래에 대한 비전을 공유했다. 이들의 연대는 단순한 정치적 동맹이 아닌 과감한 자기혁신과 체제 해체를 동반한 체질 자체를 바꾸는 결단이었다.
158년이 흐른 지금. 대한민국의 지방대학은 똑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과연 이대로 유지될 수 있는가? 아니면 해체 수준의 수술을 통해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것인가? 최근 정부는 “지방대 위기는 곧 국가의 위기”라며 구조적 개혁과 집중 투자를 예고했다.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무기력하다. 학령인구는 계속 줄고 있고 청년들은 지역을 떠나 서울로, 수도권으로 몰리고 있다. 서울 외 지역대학 상당수는 존폐 기로에 섰고 몇몇은 이미 문을 닫았다. 이제는 본질을 묻고 답할 시간이다. 샷초동맹처럼 우리는 우리 시대의 ‘유신’을 준비하고 있는가?
샷초동맹의 핵심은 ‘위기 앞에 비상한 연대를 선택했다’는 데 있다. 사쓰마와 조슈는 원래 사이가 좋지 않았다. 이념적 차이도 컸다. 그러나 ‘도쿠가와 체제’라는 공통의 장벽을 넘기 위해 연합을 택했다. 오늘날 우리 지방대학의 모습은 이와 정반대다. 지방대 간의 연합이나 협업은커녕 오히려 정원 경쟁, 지원금 경쟁, 지역 인재 쟁탈전으로 서로를 깎아내리고 있다.
지방대학을 살릴 외부적 전략은 분명 존재한다. 지역산업과의 연계 강화, 공공기관의 지역 이전 확대, 지역대학 출신 의무 채용제 도입, 국가 차원의 예산 집중 투자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샷초동맹이 단순히 정치적 타협이 아니었듯, 외부의 물적 지원만으로는 위기를 넘기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내부의 자발적 변화, 혁신 의지다.
조슈는 유신 이전 이미 ‘하구 번정 개혁’을 통해 낡은 사무라이 체제를 혁파하고 신분제를 완화하며 서양의 군사·교육시스템을 과감히 도입했다. 사쓰마 또한 서양과 교역을 확대하고 군제 개편을 단행하며 국제 감각을 갖춘 인재를 길러냈다. 그 결과 당시 ‘지역 소국’에 불과하던 이들은 일본 전체를 바꿀 중심축이 됐다.
우리 지역대학은 지금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가? 여전히 내부 혁신은 더디고 변화를 주도할 리더십도 부족하다. 지역산업과 연계한 실질적 교육은 드물고 지역 주민과 소통도 거의 없다. 학생들은 지방대에 들어왔다가 다시 수도권 대학으로 편입할 방법만 찾는다. 이런 구조 속에선 아무리 예산을 퍼부어도 근본이 바뀌지 않는다.
해법은 혁신이다. 교원시스템을 새로 짜고 수업 방식을 전면 개편하며 지역과 함께하는 ‘사회적 대학’으로 거듭나야 한다. 동시에 각 대학은 서로 경쟁자가 아닌 협력자로 인식하고 샷초동맹식 연대를 만들어야 한다. 지역 내 대학이 뭉쳐 공동학위제를 도입하고 강의와 인력을 교류하며, 공동 연구소를 설립하는 등 실질적인 협업 모델이 필요하다.
정부의 역할은 분명하다. 단순한 예산 지원을 넘어 ‘선택과 집중’의 전략을 실행해야 한다. 변화할 의지와 능력을 갖춘 대학에 대해선 서울대 수준의 전폭적 투자를 하고 변화 없이 낡은 구조만 유지하려는 대학은 과감한 구조조정과 통합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국민 세금이 투입되는 만큼, 투자 효과와 지속 가능성은 철저히 검증돼야 한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그 자체로 거대한 국가 전략이다. 단지 명문대 숫자를 늘리는 게 아니라 인재가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분산되고 지역이 자립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이다. 그 출발은 오늘의 지방대 위기를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과감하게 수술대에 올리는 것이다. 샷초동맹은 불가능해 보였던 연합을 통해 일본의 근대화를 만들었다.
지금 우리에게도 ‘그 결단’이 필요하다. 지방대학·정부·지역사회 등의 새로운 동맹. 실용을 위한 타협이 아닌 혁신을 위한 연합이 요구된다. 모든 구조적 변화는 한순간에 온다. 그리고 그것은 언제나 ‘연합과 혁신’으로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