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부산시, 의지보다 전략이 필요하다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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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열 정치부장

부산시, 지난주 '보고회' 열고
국정과제화 위한 부산 현안 선정

새 대통령의 반대 의사 분명한
산은 이전·글로벌 특별법 포함

필요성 강조… 채택 전략은 부재
"지선 위한 정략적 고려?" 우려도

대선은 끝났지만 부산시는 여전히 분주하다. 제21대 대통령의 국정과제 선정을 앞두고 지역 현안을 반영하려는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지난 5일 열린 ‘대통령 부산 공약 국정과제화 보고회’도 그 일환이었다. 그러나 보고회는 부산시의 ‘중꺾마’(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의지만을 확인한 자리였다. 시는 전략보단 의지를 앞세우고, 현실보다 명분을 강조하는, 이른바 ‘고집 행정’의 모습을 반복했다.

한국산업은행 본사 이전과 부산 글로벌 허브도시 특별법 제정을 둘러싼 부산시의 입장은 시의 전략 부재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두 과제는 대선 과정에서 대통령 공약에 포함되지 않았다. 산은 이전은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후보 당시 강한 어조로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글로벌 허브도시 특별법의 경우에도 특정 지역에만 ‘특구’ 형태의 특별법을 제정하는 방식에 반대 의견을 밝힌 바 있다.

그런데도 부산시는 이 두 과제를 여전히 핵심 과제로 고수했다. 박 시장은 보고회에서 “글로벌 허브도시 특별법은 차질 없이 진행돼야 될 것이고, 산업은행 본사 이전도 지금 약간의 이견이 있지만 부산시로서는 놓칠 수 없는 과제”라고 힘주어 말했다.

박 시장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비장한 각오마저 느껴진다. 산은 이전 등의 필요성에도 물론 공감하는 바다. 그러나 정책은 이상과 의지만으로 추진되는 것이 아니다. 상황이 바뀌고 상대가 달라졌다면 그에 따라 협상의 접근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타협의 여지도 살펴야 한다. 국정과제 선정은 결국 중앙정부와의 협력 게임이며, 일방적 요구가 아닌 상호 조율의 산물이다. 국정 운영의 실질적 동력과 정치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 같은 밀어붙이기식 접근은 오히려 역효과만 부를 뿐이다.

그럼에도 부산시는 기존 입장만을 반복하고 있다. ‘왜 필요한가’에 대한 주장은 넘치지만 ‘어떻게 관철시킬 것인가’에 대한 전략은 결여돼 있다. 부산이 요구하는 과제 하나를 밀어붙이는 동안, 다른 현실 가능한 기회들이 무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문제는 ‘기회비용’이다. 고집의 대가로 무엇을 잃는지도 냉정히 돌아볼 필요가 있다.

사실 부산시의 이러한 ‘고집 행정’은 처음이 아니다. 수 년 전 부산시는 대체거래소 출범을 강하게 반대했다. 표면적으로는 한국 증시의 규모를 고려한 ‘시기상조론’을 내세웠지만, 실상은 부산에 본사를 둔 한국거래소의 위상 약화와 세수 감소, 나아가 부산 금융중심지의 위상 약화을 우려한 것이었다. 당시 한국거래소 역시 같은 입장이었다.

시간이 지나며 상황이 변했다. 2021년 1월 한국거래소 손병두 당시 이사장은 “금융환경의 변화로 대체거래소를 거부할 명분이 약해진 만큼 대체거래소와의 건전한 경쟁을 통해 투자자들에게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하겠다”며 사실상 입장을 선회했다. 부산 금융계 일각에서도 대체거래소 출범을 막을 수 없다면 오히려 부산에 유치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당시 대체거래소 추진 주체의 가장 큰 걸림돌이 부산시의 반대였던 점을 고려할 때, 양측의 획기적 ‘딜’이 가능하다는 전망도 나왔다. 그러나 부산시는 반대 입장을 고수했다.

2022년 11월 금융위원회는 대체거래소 사업 허가 신청 요건과 일정을 발표했다. 사실상 대체거래소 출범이 확정된 셈이다. 이후 부산시는 뒤늦게 유치 노력에 나섰지만, 허가 요건이 명확해진 이상 (그 조건만 충족하면 되기 때문에) 부산시가 제시할 수 있는 카드는 남아있지 않았다.

더이상 이런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실수가 되풀이될까 우려스럽다. 우려는 최근의 정치적 상황과 맞닿아 더욱 커진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야당이 된 부산시 정부가 여당인 중앙정부와 ‘협력’이 아닌 ‘경쟁’을 벌이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지역 발전이라는 본질적 목적보다, 그 정책과 성과가 어느 정당의 것인가에 집착하는 모양새다. 지나친 비약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불과 얼마 전 단지 상대 당의 공약이라는 이유만으로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을 반대한 지역 국회의원들의 모습을 떠올리면, 마냥 과한 상상력으로만 치부하기도 어렵다.

‘원칙’을 고수할 것이냐, ‘유연성’을 발휘할 것이냐, 선택은 언제나 쉽지 않다. 그러나 지금 부산시에 필요한 것은 조금 더 유연한 사고일 테다. 새 정부의 정책 기조를 고려해 협상 가능한 지점에서 실리를 챙기는 유연성이 필요하다. 이에 앞서 무엇보다, 당리(黨利)적 판단을 배제해야 한다. 가덕신공항 적시 개항 등 부산의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여야가 힘을 합쳐도 모자를 판이다. 정책 판단에 있어 어느 정당의 공인지 혹은 과인지를 따질 여유 따위는, 지금 부산에 없다.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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