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고령자가 안전한 사회 만들기
노유진 한국도로교통공단 남부운전면허시험장 단장
부산 광안리 해수욕장 인근에서 지난 5월 21일 오후 7시께 고령 운전자가 인도로 돌진해 보행자 5명이 부상당하는 사고가 있었다. 운전자는 80대, 동승자는 79세로 고령자다. 최근 부산 지역에서 고령 운전자에 의한 사고가 빈발하고 있는 것은 지역사회 전체가 고민하고 대책을 수립해야 하는 중차대한 문제다. 이와 같은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는 통계적으로도 확인이 된다. 2024년 고령자 교통사고는 23.5%(2672건)로 2020년 15.2%(1834건)에서 건수가 31.4%나 증가했다.
전체 교통사고 4건 가운데 1건이 고령자가 가해자인 교통사고다. 그렇다고 나이가 교통사고 발생의 상수가 되는 것은 아니다. 운전 경력이 아무리 많아도 당황하거나 급해지면 가속 페달과 정지 페달을 혼동할 수 있다. 모든 연령층에서 교통사고의 우려는 있지만 고령 운전자는 집중력 및 시력의 저하와 반응 속도가 늦어지는 경향이 겹쳐져 발생 우려가 높다는 것이다. 장시간 운전으로 인한 졸음운전으로 인도로 돌진하기도 하고, 비교적 가벼운 추돌이나 충돌의 1차사고 후 당황하여 2차 대형 사고로 이어지는 사례가 많다. 아무리 보도에 차량 진입 방지 시설물을 설치한다고 해도 차량이 첨단화되어도 운전자의 잘못이 모든 사고의 근본 원인이 된다. 그래서 운전자의 적성검사를 강화하고 치매나 다른 질병이 있을 경우 반드시 확인하고 또 확인해서 운전면허증을 발급하는 것이다.
고령자를 위한 교통안전 대책은 한국도로교통공단을 비롯한 많은 기관에서 다양하게 수립되어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고령자 교통사고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고, 오히려 고령자들은 나이가 많아서가 아니라 급발진과 같은 자동차나 도로 환경으로 그 책임을 전가하는 경향이 있다. 스스로 시력이 저하되고 반응속도가 느려지고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치매 진단을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운전면허증이 없으면 생계가 어려워져서 면허증을 반납하지 못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 치매 진단과 운전면허증 중 하나만 선택하라고 하면 둘 다 포기하지 못한다고 역정을 내시는 분들도 계신다.
고령자의 이동권 문제가 아니라 이 분들이 인생에서 퇴출되지 않도록 하는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 운전면허증은 그 분들의 마지막 자존심으로 여겨지고 있다. 늙어서 이제 운전도 하지 못하는 신세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다 급한 일이 있으면 과감하게 운전대를 잡고 교차로에서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서, 왜 지금 여기 있는지도 몰라서 어쩔 줄 몰라 하시는 경우도 생기는 것이다. 99세인 할아버지가 본인은 아직도 건강하다며 운전면허 적성검사를 받으려고 하는데 아들과 손자가 와서 제발 운전면허증을 취소시켜달라고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고령자의 신체적·정신적 문제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가족이다. 본인은 몰라도 가족은 아는 것이 고령자의 운전 능력이다.
가장 큰 효도는 부모님의 운전면허증을 확인하고 지금 바로 당장 운전면허 적성검사를 받게 하는 것이다. 치매 검사도 하고 시력 검사도 하고 가까운 운전면허시험장에 오셔서 운전 능력에 대한 컨설팅을 받으시고 운전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스스로 운전을 포기하게 하는 것이 자식 된 도리다.
교통사고는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의 불행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다른 가족의 불행과 겹쳐져 큰 곤혹을 치르는 악몽의 뫼비우스 띠에 올라타는 것이다. 운전하는 부모님을 수시로 보호하며 조금이라도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면 교통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전조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
운전면허증이 없어도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것이 급선무다. 무작정 운전을 못하게 하는 것은 그분들에게 더 큰 상처를 줄 수 있기에 대중교통의 확충과 걷기 편하고 안전한 보도 정비가 우선되어야 한다. 건강한 노후를 위해서 걸어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고령자들이 운전하지 않고도 인생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젊은 우리의 책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