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환율의 일상화, 외국인 자금 떠나고 물가 상승
원·달러 환율 1400원 대 지속 이어져
외환위기·금융위기 이후 세 번째 기록
취약계층에게 더 가혹한 '칩플레이션'
당분간 1450원대 유지 전망도 나와
이달 들어 대통령의 계엄령을 시작으로 원화 가치는 급속히 떨어졌고 환율은 심리적 저지선인 1400원을 훌쩍 넘었다. 외환 위기,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세 번째인데, 급격히 오른 환율은 외국인 투자금 이탈과 함께 국내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내년 초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까지 이같은 국면은 지속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외환위기·금융위기·2024년
22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를 지속하는 것 우리 경제에서 역대 세 번째다. 환율이 1400원을 넘어 장기간 지속된 것은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 과거 두 차례가 전부였다. 1997년 12월 9일 환율이 1460원을 기록한 이후부터 1998년 3월 20일까지 약 100일간 환율은 1400원 위에서 움직였다. 2008년 금융위기 때는 2008년 11월 17일부터 12월 9일까지 23일간 1400원을 넘었다.
정부는 그동안 외환관리를 통해 환율이 1400원을 넘지 않도록 면밀히 관리해 왔다. 시장에 심리적인 안정을 주기 위해서다. 환율이 1400원 위로 올랐다는 것은 정부의 관리 범위를 넘어선 것이다.최근 우리나라 환율은 2024년 12월 2일 1401원을 기록하며 1400원을 넘어선 이후 12월 20일까지 20일간 1400원 위에서 움직이고 있다. 처음에는 계엄령 선포로 국가 위험도가 크게 올라갈 것이라는 불안감이 시장을 휩쓸었던 점이 가장 큰 이유였다. 하지만 정치 불안이 시간이 갈수록 줄었지만 환율은 시간이 갈수록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20일에는 달러당 원화 환율이 1450원을 넘어섰다.
하건형 신한투자증권 책임연구원은 “현재 대외 강달러로 인해 당분간 1450원 선을 지속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최근 외환보유고 부족으로 인한 환율 상승 요인이 정부의 외환스와프 체결 등으로 어느 정도 해소되는 점이다”고 말했다.
■투자 시장에서 떠나는 외국인
고환율은 한국과 미국의 금리 차이를 촉발시켰다. 급격히 오른 환율의 가장 큰 타격은 투자 시장에서 외국인 이탈이다. 자금은 수익률을 따라 움직이는 만큼 금리가 낮은 국가에서 높은 나라로 갈 수밖에 없다.
지난 20일을 기준으로 미국과 한국 국채 10년 물로 비교한 한미 간 금리 차이는 1.746%포인트에 달한다. 미국 국채 금리는 연 4.565%, 한국 국채 금리는 연2.819%다. 한미 간 장기 금리 차는 9월에는 0.6%포인트 정도였다. 이후 조금씩 올라 석 달 만에 3배가량 늘었다. 미국금리는 오른 반면 한국 금리는 오히려 떨어지면서 발생한 현상이다. 지난 20일을 기준으로 한 한미 간 장기금리 차이는 올해 들어 가장 높은 수준이다.
외환의 수급 요인도 좋지 않다. 증권거래소 통계에 따르면 지난 19일 기준으로 최근 한 달간 외국인들은 코스피(KOSPI)시장에서 5조 4684억 원의 주식을 순매도했다. 외국인들이 주식을 팔고 시장을 떠날 때는 달러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 원화값 하락 요인이 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물가는 ‘칩플레이션’
20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11월 국내 공급물가지수는 10월(123.47) 보다 0.6% 오른 124.15로 집계됐다. 11월 생산자물가지수는 10월(119.01) 보다 0.1% 오른 119.11로 집계됐다. 이 지수는 지난 7월 119.56을 기록한 뒤 8월 119.38, 9월 119.16, 10월 119.01 등으로 하락하다가 4개월 만에 반등했다.
한은은 칩플레이션이 취약계층에 더 충격을 줄 것으로 분석했다. 칩플레이션은 가격이 낮다는 의미의 ‘칩’(cheap)과 물가 상승을 의미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다. 이 같은 현상은 고물가 시기 저렴한 상품을 주로 소비하는 취약 계층 부담이 상대적으로 더 가중됐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한은이 소득 계층별로 저가, 고가 상품에 얼마나 쓰는지를 추산해 계산해 봤더니, 2019년 4분기~2023년 3분기 소득 하위 20%의 실질적인 누적 물가상승률이 13%로, 소득 상위 20%(11.7%)보다 1.3%포인트 더 높았다. 이문희 한은 물가통계팀장은 “11월 통관 시점 기준의 수입물가는 환율 상승과 10월 국제유가 상승 영향으로 생산자물가보다 더 크게 올랐다”면서 “최근 환율 상승 여파가 수입물가에 반영되면서 시차를 두고 생산자물가와 국내공급물가에 반영될 것”이라고 말했다.
탄핵 정국 등 국내 요인과 트럼프 신행정부 출범 등 외부 요인을 고려하면, 앞으로도 환율은 당분간 1450원 부근에 머물며 경우에 따라선 1500원에 이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도 나온다.
김준용 기자 jundrago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