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 의사가 모든 질병 진료… 반항자는 ‘약물 투여’ 정신 유린
[형제복지원 진실 규명 조사 결과] 부산시도 방관했다
복지원 수용자 사망률, 일반 국민의 13.5배
사망 원인 은폐·아동 카드 기록 임의 작성
구타·성폭력 등 다반사·초등 의무 교육 박탈
시·관할 구청, 지도·감독 말뿐… 사실상 묵인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원회)가 24일 발표한 ‘부산 형제복지원 인권침해 사건’ 조사 결과를 보면 지방 정부의 무관심과 방관 속에 수용자들의 인권이 철저하게 무너진 사실이 다시 한번 확인된다. 이번 조사를 통한 형제복지원 인권침해는 △아동 강제수용 △철저한 외부 차단과 반인권적 통제 △아동 반감금 △비인도적인 진료 △약물을 통한 육체적·정신적 약탈 등으로 요약된다.
■높은 조기 사망률과 숨겨진 사망자들
이번 진실규명을 통해 형제복지원 사망자가 현재까지 알려진 공식 사망자 수(1975~1988년)인 552명보다 100여 명 늘어난 657명인 것으로 새롭게 확인됐다. 진실화해위원회는 형제복지원 사망자가 언급된 모든 자료, 형제복지원 소식지 〈새마음〉과 신상기록카드, 영락공원 가매장 명단 등을 비교 검토해 사망자 수가 657명이라는 사실을 새로 밝혀냈다. 이는 형제복지원 측의 부실한 사망자 처리와 절차, 기록 조작 때문이라고 진실화해위원회는 전했다.
1986년 기준 형제복지원 수용자 사망률은 같은 해 65세 이하 국민 사망률보다 13.5배나 높았다. 또 형제복지원 사망자의 평균 수명은 일반 인구에 비해 25년이 적은 것으로 드러났으며, 여성이 남성에 비해 현저하게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이번 조사를 통해 당시 형제복지원 측이 시신을 임의로 가매장하고 허위 사망진단서로 사인까지 은폐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과거 형제복지원 내부에서 만연했던 구타, 성폭행 등 가혹행위와 비전문적 의료행위, 수용자 부실 관리 등 참상을 단면적으로 보여 주는 근거다.
■아동 반강제 입소·가혹행위 일상화
형제복지원은 수많은 아동을 반강제로 입소시키면서도 제대로 된 아동수용 절차를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1974년부터 1986년까지의 ‘형제복지원 요보호자수용의뢰철’ 자료에 의하면 아동 시설수용 전 단계에서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연고자 확인과 아동 개별상담 등의 절차가 부실하게 이뤄졌다. 아동에 대한 철저한 조사 없이 마구잡이로 수용했고, 추후 수용 아동에 대한 관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가장 중요한 서류인 ‘아동카드 기록’은 특정한 시점에 임의로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아동의 진술에만 의존해 연고자 인적사항을 확인하거나 이름이 잘못 기재되는 등 신상기록카드 작성과 연고자 확인 절차가 허술하게 이뤄진 것으로 조사됐다.
형제복지원은 복지시설을 표방하면서도 복종을 강요하는 반감금 상태를 유지하며 외부와 수용자를 철저하게 차단했다. 이 과정에서 구타와 가혹행위, 성폭력도 비일비재하게 발생했다. 진실화해위원회 조사 결과 형제복지원은 군대식 통제와 반감금 시스템을 기반으로 수용자들을 외부와 철저히 분리시켰으며, 가족 면회를 차단하고 편지 쓸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이에 대해 한 형제복지원 피해자는 “소대장이 수용자들에게 평생 형제복지원에 있을 수도 있으니 어떠한 의사표시나 항의를 하지 말고 빨리 적응하라고 충고한 적도 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형제복지원은 특히 같은 수용자들 사이에 직위를 주는 등 수직적인 계층 관계를 만들어 폭력과 인권침해가 가능한 구조를 설계했다. 형제복지원 진실규명대상자 166명(남성 153명, 여성 13명) 중 성폭력을 당한 적 있다고 응답한 여성은 4명(30.8%)으로 조사됐다. 이어 남녀를 불문하고 진실규명대상자 80% 이상이 구타와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중복 응답했다.
■교육 권리·의료 지원도 박탈
형제복지원 측은 헌법과 교육법에 따라 의무교육으로 규정된 초등교육의 기회마저 박탈했다. 진실화해위원회가 확인한 형제육아원 수용자 199명 중 63명은 의무교육과 관련된 내용이 전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나머지는 학교에 다닌 적이 있는 것처럼 기재돼 있으나, 이 내용은 형제육아원 아동카드나 수용자명부의 입소 사유처럼 임의로 기재돼 정확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형제복지원 측 자료나 신청인의 진술을 토대로 당시 부산 용당국민학교에 취학한 내용이 있는 79명에 대해 자료조사를 해 본 결과, 실제로 용당국민학교를 다닌 것으로 확인된 사람은 41명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외에도 형제복지원은 수용자들 중 일부를 신축 중인 다른 시설로 보내는 형태를 취해 노동력을 이용하고 임금을 주지 않는 등 노동력을 착취하기도 했다.
비인도적인 진료 실태와 약물을 통한 육체적, 정신적 약탈 행위도 드러났다. 비의료인에 의한 임의적 진료가 만연했고, 산부인과 전문의인 촉탁의가 정신질환에 대해 940건이나 진료하는 등 산부인과와 관련 없는 모든 질병에 대해 진료와 처방까지 한 것으로 조사됐다. 형제복지원 회계 자료에 따르면 1986년도에 지출된 ‘정신환자시약비’는 총 1267만 6320원으로 1015만 원인 ‘일반환자시약비’보다 많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형제복지원 측이 반항하는 수용자들을 강압과 폭력으로 해결할 수 없을 때 임의적으로 정신 약물을 투여한 뒤 정신병동으로 전원한 근거 자료로 꼽힌다.
이 같은 인권침해 사건은 관리감독 권한이 있는 부산시와 관할 구청의 묵인 속에 이뤄진 것으로 조사됐다. 부산시 북구청은 1986년 ‘형제복지원에 대한 지도와 감독을 했다’고 밝혔으나, 당시까지 형제복지원 내부에서 발생한 가혹행위와 관련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았다. 한 형제복지원 피해자는 조사 진술에서 “종종 공무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형제복지원에 방문했는데, 박인근 원장이 안내하는 대로 몇 군데 대충 둘러보고 돌아가는 정도였으며, 소대를 확인하거나 수용자들을 직접 대면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곽진석 기자 kwak@busan.com ,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