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당신의 한 표는 부산의 '생존 매뉴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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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규 동아대 대학원 재난관리학과 책임교수

소멸 임계점·정주 여건 양극화 난제
6·3 지선, 지역 미래 결정짓는 자리
연고·정서적 일체감만으로 결정 땐
4년간 오작동 책임 유권자에게 있어
과거 행적·현재 행보·미래 직무 역량
치밀한 검증 통해 '진짜 일꾼' 뽑아야

오는 6월 3일, 부산은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재보궐선거라는 중대한 분수령을 맞이한다. 새 정부 출범 1년을 지나는 시점에 치러지는 이번 선거는 단순한 정치적 이벤트가 아니라, 지역 소멸의 임계선 앞에 선 부산의 미래를 결정짓는 자리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여전히 ‘누가 돼도 내 삶은 바뀌지 않는다’는 냉소가 흐른다. 과연 그러한가. 우리가 손에 쥔 ‘선거권 사용 설명서’를 제대로 읽지 않을 때, 그 냉소의 비용은 고스란히 내 일상과 지역 사회로 배달된다.


가전제품 하나를 살 때도 우리는 설명서를 정독한다. 잘못 다루면 고장이 나고, 사람이 다치기 때문이다. 하물며 향후 4년간 부산의 해묵은 숙제를 풀어갈 ‘일상의 경영자’를 뽑는 일은 어떠해야 하는가. 지금 부산의 자화상은 ‘노인과 바다’라는 자조 섞인 수식어에 압축돼 있다. 부산은 2021년 특·광역시 가운데 가장 먼저 초고령사회에 진입했고, 65세 이상 인구 비중은 25%를 넘어섰다. 광역시 최초로 ‘소멸위험지역’ 단계에도 들어섰다. 청년이 수도권으로 떠난 빈자리는 적막이 채우고 있다. 헤밍웨이의 소설에서 노인이 사투 끝에 거대한 청새치를 잡고도 결국 뼈만 남긴 채 항구로 돌아왔듯, 부산이 추억의 잔해만 부둥켜안은 도시로 남는 일은 막아야 한다.

‘아파트’로 대변되는 정주 여건의 양극화도 시민의 삶을 팍팍하게 만든다. 우후죽순 들어서는 고층 아파트들이 부산의 상징인 바다 조망권을 사유화하는 사이, 원도심 노후 주거지는 재개발의 덫에 걸려 공동화되고 있다. 해수면 상승과 연안 침식, 폭염과 폭우의 일상화는 ‘바다를 품은 도시’ 부산의 안전을 정면으로 위협한다. 기후 위기는 자연현상이지만, 도시의 대비와 적응 수준은 정책의 영역이다.

이번에 선출될 시장과 구청장, 국회의원은 이 난제를 풀 실질적 권한을 위임받는다. 예산 편성과 인사, 입법과 조례 제정이라는 강력한 도구가 모두 이들의 손끝에서 작동하기 시작한다. 노인 복지 예산의 효율적 배분, 산업은행과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의 완수, 북항 재개발과 가덕도신공항 적기 개항, 북극항로 환적 거점화, 부산형 급행철도(BuTX) 구축, 그리고 난개발을 막는 도시계획 수립이 모두 이들의 결정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부산은 ‘우리가 남이가’라는 한마디로 요약되는 지역주의 정서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30여 년 전 한 복국집에서 시작된 이 구호는 지금도 선거철이면 부산 시민의 합리적 선택지를 좁히는 보이지 않는 족쇄로 남아 있다. 학연, 지연, 혈연이라는 단순한 연결고리만으로 특정 후보를 칭찬하거나 맹목적으로 옹호하는 일은 위험천만하다. 그들이 쥐는 권한은 모든 통치 행위의 향방을 가르고, 한 개인의 강점과 약점이 그대로 시정과 국정의 역량과 한계로 옮겨와 내 삶과 지역 공동체 전체를 한꺼번에 바꿔놓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누구인가. 같은 학교 동문도, 같은 고향 향우도, 같은 정당 지지자도 아니다. 신공항이 늦어지면 함께 손해 보는 시민이고, 청년이 떠나면 함께 늙어가는 부모이며, 바다가 병들면 함께 위협받는 이웃이 진짜 ‘우리’다. 이 매뉴얼의 첫 경고문은 그래서 분명하다. 단순한 연고와 정서적 일체감만으로 결정 버튼을 누를 때, 오작동의 책임은 전적으로 사용자에게 있다.

매뉴얼의 본문에는 세 가지 검증 항목이 담겨야 한다. 첫째, 후보의 과거 행적이다. 무엇을 약속했고, 무엇을 지켰으며, 무엇을 어겼는지를 사실에 근거해 살펴야 한다. 둘째, 현재 행보의 정합성이다. 내건 공약이 부산의 현안과 맞물리는지, 재원 조달 방안은 구체적인지,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지를 따져야 한다. 셋째, 미래의 직무 수행 역량이다. 위기 앞에서 권한을 사익이 아닌 공익에 쓸 인물인지, 그의 강점과 약점이 부산의 과제와 어떻게 맞물릴 수 있는지를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인상과 분위기라는 신기루가 아닌, 사실과 검증이라는 견고한 언어가 매뉴얼의 본문을 채워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권한의 오작동을 막고 부산의 4년을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다.

권력의 진짜 주인은 투표하는 시민이다. 향우회나 동호회의 회장직조차 결국 한 사람의 몫이고, 그 사람이 모임의 향방을 가른다. 하물며 시민의 일상을 4년간 좌우할 자리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6월 3일, 투표소로 향하는 발걸음마다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이 후보는 ‘노인’을 예우하며 ‘청년’의 미래를 열 혜안이 있는가. ‘바다’를 공존의 자산으로 지켜낼 의지가 있는가. ‘아파트’ 숲에 가려진 시민의 권리를 회복할 역량이 있는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 권력을 올바르게 작동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주권자의 준엄한 한 표뿐이다. ‘진짜 일꾼’을 가려내는 수고로움이야말로 향후 부산의 일상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생존 매뉴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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