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물속에서 건져 올린 공포
영화평론가
영화 '살목지' 스틸컷. (주)쇼박스 제공
원한이 얼마나 깊고 억울한지 죽지도 살지도 못한 채 산 자를 향해 끊임없이 손을 뻗는 귀신. 물에서 죽은 이가 다른 이를 끌어들여야만 그곳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는 이 오래되고 무서운 물귀신 이야기는 여전히 유효하다. 과학이 발달한 지금 봐도 이 낡은 서사가 인기라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그런데 뻔한 줄 알면서도 속절없이 빠져드는 것, 그것이 바로 공포의 매력일 것이다. 이상민 감독은 바로 그 익숙한 두려움을 영화 ‘살목지’에 담는다.
충청남도 예산군에 실재하는 저수지 ‘살목지’는 공포 팬들 사이에서는 익숙한 장소다. 예능프로그램에서 소개된 뒤 유명한 심령 스팟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이미 여러 차례 소비된 장소에서 새로운 공포가 나올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또한 30억 규모의 중저예산 작품인 데다 스타 캐스팅에 기대지도 않았으니, 기대감이 크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영화는 한국 공포 영화 흥행 순위를 다시 쓰며 극장가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한국 공포 영화 흥행 다시 쓴 '살목지'
익숙한 물귀신 이미지 낯선 방식으로
360도 파노라마 카메라로 만드는 공포
이야기의 뼈대는 간단하다. 로드뷰 서비스 회사에서 살목지를 촬영한 화면에 정체불명의 형체가 포착된다. 귀신이 있을지 모른다는 소문이 횡행한 장소에 선뜻 가겠다는 사람은 없다. 게다가 살목지에서 한 차례 촬영을 마친 ‘교식’이 연락이 닿지 않은 것도 불안감을 키운다. 그 자리에 ‘수인’이 자원한다. 선배 교식의 실종이 살목지와 무관하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수인과 함께 살목지로 향하는 팀원들은 하나같이 개성이 넘친다. 공포 채널을 운영하는 유튜버 세정, 로드뷰 촬영 업체 직원이자 형제 사이인 경태와 경준, 그리고 장비 문제로 뒤늦게 합류하는 수인의 전 남자친구 기태까지. 여기에 연락이 끊겼던 교식이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면서 기이한 일들이 연달아 벌어진다. 그리고 살목지 근처를 지키고 있는 돌탑은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믿음으로 쌓였지만, 어느 순간 위협이 되어 발목을 잡는다.
‘살목지’는 장르의 클리셰를 충실히 따르는 영화다. 귀신을 믿지 않는 인물부터 차례로 사라지는 전개, 금기를 어기는 행동들, 팀이 불신과 분열로 무너지는 과정. 공포 영화의 관객이라면 누구나 다음 장면이 눈에 선할 것이다. 그런데도 깜짝 놀라게 만드는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며 긴장하게 만든다. 특히 영화 속 공포는 저수지를 둘러싼 공간에서 발생한다. 사방으로 트여 있음에도 인물들은 빠져나가지 못한다. 내비게이션은 엉뚱한 곳을 가리키고, 시간도 멈춰 있는 듯하다. 언제든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완벽하게 닫힌 공간이 바로 살목지인 것이다. 게다가 핸드헬드 카메라가 만들어내는 흔들림, 어디를 향해도 불안을 유발하는 360도 로드뷰 화면, 영화 중반 이후 쉬지 않고 들려오는 기계음 사운드는 서사가 아니라 공포를 ‘체감’하게 만든다.
또한 익숙한 물귀신의 이미지도 낯선 방식으로 변주된다. 수면에 비스듬히 떠 있는 시체처럼, 혹은 세이렌처럼 무리 지어 움직이는 존재들은 일정한 형태를 갖추지 않는다. 물에 풀어진 수초처럼 신체의 일부만 드러내거나 소리로만 존재감을 드러낸다. 실재인지 환상인지 알 수 없는 모호함이 두려움을 증폭시키는 것이다. 이때 살목지는 뻔한 줄 알면서도 놀라게 만드는데, 이는 머리가 아니라 ‘몸’이 먼저 반응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살목지의 공포는 성공이다.
한국 공포 영화 가운데 최다 관객 수를 기록한 ‘살목지’는 영화 밖에서도 묘한 장면을 만들어내고 있다. 실제 촬영지인 저수지에 방문객들이 몰리면서 “자본주의로 퇴마한다”는 농담까지 나온다. 억울한 원혼이 떠돈다는 공간이 영화 한 편으로 관광지가 된 셈이다. 공포를 두려워하면서도 끝내 찾아가 보고 싶어 하는 마음. 어쩌면 그것이 가장 낯선 공포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