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 뷰] 지켜야 할 항해의 자유
김인현 고려대 명예교수·한국해양대 석좌교수·선장
바다 이용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원칙
1982년 유엔해양법협약 통해 확립돼
근래 해양 질서 흔들리고 항로 위기
대한민국, 관찰자 아닌 수호자가 돼야
바다는 멀리 떨어져 있는 듯하지만, 사실 우리 삶 가까이에 늘 존재한다. 육지에서 살아가는 우리 일상 곳곳에 바다가 스며 있다. 우리가 먹는 생선은 물론 조리에 사용하는 LNG와 LPG도 바다를 통해 수입된다. 식용유의 원료가 되는 곡물, 자동차 연료인 원유, 플라스틱의 원료, 요소수, 도로 포장에 쓰이는 아스팔트까지 대부분 바닷길을 통해 들어온다.
우리의 대표 산업인 조선업 역시 바다와 떼려야 뗄 수 없다. 선박은 바다에서 건조되고 진수된 뒤, 다시 바다를 항해한다. 탈탄소 시대의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주목받는 암모니아 또한 바다를 통해 수입될 가능성이 크다. 암모니아는 공기 중 질소와 수소를 결합해 생산할 수 있으며, 수소는 원자력발전으로 생산한 전기를 활용해 바닷물을 수전해함으로써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수전해 방식 역시 바다를 활용하는 방법이다. 이처럼 우리는 바다를 자유롭고 당연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여긴다. 그러나 이러한 이용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원칙이 있다. 바로 항해의 자유다.
항해의 자유는 국제사회가 오랜 시간에 걸쳐 바다에서 형성해 온 핵심 원칙이다. 17세기 네덜란드 법학자 후고 그로티우스는 저서 〈자유해양론(Mare Liberum)〉에서 바다는 특정 국가의 소유가 될 수 없으며 모든 인류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사상에서 비롯된 항해의 자유는 인류가 지켜야 할 바다의 핵심 가치이자 기본 원칙으로 자리 잡았다. 관습법으로 발전해 온 이 원칙은 1982년 유엔해양법협약을 통해 국제법적 원칙으로 확립됐다.
바다는 공해, 배타적 경제수역, 영해 그리고 내해로 구분된다. 공해에서 항해 자유는 절대적이다. 공해는 연안국이나 내륙국에 관계없이 모든 국가에 개방되고, 공해의 자유에는 항해의 자유가 포함된다고 유엔해양법은 명시하고 있다. 강대국이라 하더라도 공해에서 임의로 선박을 정지시키거나 통항을 제한할 수 없다. 공해에서 항해 자유는 국제 해양 질서의 안정을 지탱하는 기둥이 된다.
1982년 유엔해양법은 새롭게 설정된 배타적 경제수역에서도 선박의 항해 자유가 공해와 마찬가지로 보장된다는 점을 명시해 그 원칙이 훼손되지 않도록 했다. 이에 선박은 연안국의 기선으로부터 200해리 범위에 들어오더라도 12해리 영해에 이르기 전까지는 온전한 항해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 기선에서 12해리까지의 영해는 연안국 영토로 인정되기에 연안국은 자국의 안전과 질서 유지를 위해 주권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그럼에도 항해의 자유 원칙은 여전히 작용해 외국 선박은 영해를 통과할 때 ‘무해통항권’을 보장받는다. 즉 외국 선박이 연안국이 정한 무해통항의 조건을 준수하는 한 자유롭게 통과할 수 있다. 다만 내해와 항구로의 진입은 연안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연안국이 가지는 이러한 제한은 어디까지나 최소한의 범위에 그쳐야 하며 항해의 자유라는 기본 원칙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 특히 국제항행해협에서는 항해의 자유가 더욱 강하게 보호된다. 두 개의 공해 또는 배타적 경제수역을 연결하는 국제항행해협은 전 세계 해상교통의 핵심 통로이다. 이곳이 막히면 에너지 공급과 물류 흐름이 단절되고, 세계 경제 전체가 큰 충격을 받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유엔해양법협약은 해협에서의 선박 통과통항권을 인정하고 있다. 선박은 신속하고 계속적으로 해협을 통과할 권리를 가지며, 연안국은 이를 방해할 수 없다. 다만 연안국은 안전한 항행을 위해 항로 지정 등 관리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항해의 자유가 현실적인 위협에 직면하고 있다. 특정 국가가 군사적·정치적 이유로 해협을 봉쇄하거나 통항료를 부과하려는 시도는 항해 자유라는 국제해양법 원칙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다. 특히 중동 지역 전쟁으로 긴장이 고조되면서 주요 해협의 안전성이 흔들리고 있으며, 이는 곧바로 글로벌 에너지 시장과 물류 시스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제항행해협에서의 통항을 방해하는 부과금의 부과는 금지돼 있다. 무해통항권을 가지는 선박에 대해 영해를 통과한다는 이유로 부과금을 징수하는 것도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도 항해의 자유는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대한민국은 에너지와 원자재를 바다를 통해 들여오고, 수출품을 바닷길로 내보내는 해양국가이자 무역국가이다. 항해의 자유가 지켜질 때 우리 경제는 안정되고, 국가의 번영도 가능해진다.
따라서 항해의 자유는 단순한 법 원칙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식탁, 산업, 에너지, 안보, 그리고 미래 세대를 지키는 대한민국의 생존과 직결된 국가적 가치이다. 해양국가인 우리는 항해의 자유를 지키는 데 있어 관찰자가 아니라 당사자이며, 이를 수호하는 것은 곧 우리의 국익을 지키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