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공휴일이 된 노동절 이후, 노동운동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미얼 리더먼 유켈리스, Touch-Sanitation 퍼포먼스, 1979-80, 이미지: WIKIART, 비평·교육 목적의 인용.
2026년, 노동절(5월1일)이 공식 공휴일이 되었다. 1970년 11월 13일, 스물두 살의 청년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분신했다. 그의 희생은 대한민국 노동운동의 기폭제가 되었으며, 또한 70년대 노동과 민주화운동의 주요한 토대가 되었다. 이후 노동운동은 민주화운동과 결합하며, 거리와 공장에서 동시에 진행되었다. 노동은 생존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과 시민권의 문제로 전환되었다.
세계적으로도 노동은 구조적 변화를 겪어 왔다. 19세기 산업자본주의에서 노동은 물리적 생산과 결합돼 있었고, 20세기 복지국가 체제에서는 일정한 보호를 받았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신자유주의는 노동을 다시 해체하기 시작했다. 정규직은 축소되고, 비정규직과 플랫폼노동이 확산되었다. 배달 노동자는 고용되지 않은 채 일하고, 플랫폼 노동자는 알고리즘에 의해 통제되며, 돌봄 노동은 여전히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노동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세계사적 관점에서 노동의 역사는 끊임없는 확장의 역사였다. 처음에는 공장 노동자만이 노동자로 인정되었지만, 이후 여성 노동, 서비스 노동 등이 포함되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또 하나의 경계에 서 있다. 데이터 생산, 감정 노동, 돌봄 노동과 같은 영역을 보호받아야 할 노동으로 포함하는 문제이다. 따라서 21세기의 노동운동은 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제 노동운동은 다음과 같은 과제를 마주하고 있다. 첫째, 보이지 않는 노동을 드러내는 것. 둘째, 노동의 범주를 확장하는 것. 셋째, 노동을 인간의 존엄과 다시 연결하는 것. 이 지점에서 예술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술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장치였다.
미국의 페미니스트 작가 미얼 리더먼 유켈리스(1939년생)는 유지(management)와 돌봄(care)을 예술로 끌어들인다. “나는 유지·관리 노동을 예술로 만들겠다”고 선언하면서 그녀는 청소 노동자와 함께 작업하며, 청소, 돌봄, 유지 등 사회를 유지하지만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을 예술의 중심으로 끌어올렸다. 그녀는 자신의 퍼포먼스를 통해 뉴욕의 환경미화원 8500명과 일일이 악수하며 그들의 노동을 예술로 만들었다.
전태일 이후 반세기가 지났다. 우리는 더 이상 그가 살았던 시대의 노동 조건 속에 있지 않다. 그러나 그의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인간답게 살 권리는 어디에 있는가.” 이 질문을 다시 묻는 순간, 노동절은 과거의 기념일이 아니라 미래를 향한 정치적 시간으로 변한다. 유켈리스의 작업은 이에 대한 하나의 응답이었다. 유켈리스는 퍼포먼스를 통해 말하는 대신 몸으로 인사한다. 이는 보이지 않는 노동자를 대상이 아니라 존재로, 이름 있는 개인으로, 존엄한 인간으로 호출하는 행위였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