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 뷰] 바다 '역동적인 경험'의 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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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 서핑 국가대표 감독

4월의 바다는 계절의 변화를 가장 먼저 알린다. 차가운 바람이 잦아들고 햇살이 길어지면, 부산의 해변은 다시 사람들을 맞을 준비를 시작한다. 본격적인 해양 레저 시즌을 앞둔 지금, 바다는 시민 곁으로 성큼 다가와 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사람에게 바다는 가까이 있는 풍경일 뿐, 기꺼이 들어가 일상을 나누는 ‘삶의 공간’으로는 낯설고 멀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어른들에게 “물 조심하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며 자랐다. 바다는 경외의 대상인 동시에 사고가 잦은 위험한 곳, 함부로 다가가서는 안 되는 영역으로 교육받았다. 이러한 ‘물에 대한 공포’는 무의식 속에 바다와의 거리감을 만들었고, 이는 고스란히 부산 해양 문화의 수동성으로 이어졌다. 바다를 ‘도전과 놀이의 대상’이 아닌 ‘조심하고 피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하는 한, 부산이 진정한 해양 도시로 도약하기는 어렵다.

물에 대한 공포 거리감·수동성 만들어

부산 해양 도시 표방하지만 규제 중심

바다 활용에 대한 정책적 상상력 부족

풍경 아닌 삶의 공간돼야 경쟁력 있어

부산은 스스로를 해양 레저 도시라 부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현실은 다소 다르다. 우리는 바다가 그 자리에 ‘있기 때문에’ 해양 도시라고 착각해 왔다. 천혜의 자원이라는 이름 아래, 파라솔 개수나 세는 수준의 관리에 머물며 바다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정책적 상상력은 충분히 발휘되지 못했다. 이러한 자원 의존적 관성은 행정 편의주의와 결합해, 바다 곳곳에 ‘제약’이라는 빗장을 거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해양 레저 공간을 둘러싼 반복적인 갈등이다. 파도가 좋은 성수기가 되면, 바다를 적극 활용하려는 이들과 안전과 질서를 우려하는 지역 구성원 사이의 긴장이 되풀이된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갈등 그 자체가 아니다. 이러한 상황이 충분히 예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공간을 창의적으로 재배치하거나 시기별·구역별 상생 모델을 제시하지 못한 채 ‘구역 나누기’라는 소극적 관리에 머물러 온 행정의 한계가 더 크다. 이 사례는 특정 지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부산 전반의 해양 공간 관리가 안고 있는 구조적 한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결국 정책의 부재는 지역 사회의 피로감을 키웠고, 정작 부산의 청년 해양 레저 인구는 더 자유롭게 바다를 누릴 수 있는 다른 지역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바다를 보러 오라”고 외치면서도, 바다와 가장 깊이 교감하려는 이들에게는 각종 제약을 가하고, 지역민들에게는 갈등의 부담을 떠안기는 모순된 풍경이 반복되고 있다. 이는 비단 해양 레저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부산의 수많은 아름다운 해안선은 여전히 ‘입수 금지’ 표지판에 가로막혀 있으며, 개인이 카약이나 소형 보트를 띄울 수 있는 최소한의 기반 시설조차 갖춰지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 지점에서 해외 해양 도시들의 모습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필자가 학창 시절을 보냈던 호주의 시드니, 그리고 업무로 자주 찾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해안 도시들은 바다가 어떻게 도시의 ‘생활권’이 될 수 있는지를 공통적으로 보여준다. 이들 도시는 항만과 해변, 마리나와 해양 레저 산업이 분절되지 않고 하나의 일상적 흐름으로 연결돼 있다. 바다는 통제해야 할 위험 요소가 아니라 안전한 시스템 안에서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삶의 공간으로 관리된다. 핵심은 바다를 막는 규제가 아니라 이용을 전제로 설계된 제도와 인프라다.

이제 부산에도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물 조심하라”며 아이들의 손을 붙잡던 방어적 태도에서 벗어나 바다를 어떻게 안전하고 즐겁게 누릴 것인가를 가르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바다는 더 이상 전망권(Ocean View)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시민 누구나 일상적으로 바다와 접촉할 수 있는 경험권(Ocean Life)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이는 특정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자는 주장이 아니다. 바다라는 공공재를 더 안전하고 품격 있게 누리기 위해, 행정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자는 제안이다.

흔히 부산을 두고 ‘노인과 바다’라는 자조 섞인 말을 하곤 한다. 하지만 이는 인구의 고령화 때문이 아니라, 바다를 정지된 풍경으로만 묶어두려는 우리의 낡은 인식과 규제가 만든 합작품일지도 모른다. 바다를 두려워하고 가두는 도시는 미래를 갖기 어렵다. 해양 도시의 경쟁력은 바다를 얼마나 많이 가졌는지가 아니라, 시민이 바다를 얼마나 자연스럽게 누릴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4월의 파도는 이미 우리를 부르고 있다. 금기를 넘어 모든 시민이 바다의 역동적인 주인이 될 때, 부산의 진짜 성장은 해변 밖이 아니라 바로 그 파도 위에서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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