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의 시그니처 문화공간 이야기]도시를 걷는 미술관 아로스(ARos)가 만든 감각의 풍경
아트컨시어지 대표
도시를 걷는 미술관 아로스(ARos)가 만든 감각의 풍경 덴마크 유틀란트 반도의 동쪽 해안에 자리한 오르후스(Aarhus)는 수도 코펜하겐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도시이자 미튈란 지방의 항구도시다. 항구를 기반으로 성장한 이 도시는 산업의 기억 위에 예술과 디자인을 덧입히며 스스로를 북유럽의 문화 도시로 재정의해 왔다.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에는 아로스 오르후스 미술관(ARoS Aarhus Art Museum)이 있다.
‘아로스(ARoS)’라는 이름은 고대 노르드어 ‘Á(강)’와 ‘ós(하구)’에서 비롯된다. 직역하면 ‘강이 바다로 흘러드는 곳’, 곧 도시의 기원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미술관은 이름에서부터 도시의 시간과 장소성을 끌어온다. 과거의 지명을 현재의 문화 공간으로 전환하는 이 명명 방식은, 건축이 단순한 시설이 아니라 도시의 기억을 재구성하는 장치임을 드러낸다.
2004년 개관한 이 미술관은 덴마크 건축사무소 슈미트 하머 라센의 설계로 완성되었다. 외관은 절제된 직육면체지만, 내부는 전혀 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중앙의 거대한 아트리움과 이를 따라 이어지는 나선형 동선은 관람자를 위로 끌어올린다. 이 수직적 흐름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하나의 서사다. 관람자는 작품을 보면서 동시에 건축을 경험한다.
이 미술관을 세계적 명소로 만든 결정적 요소는 옥상에 설치된 “당신이 걷는 무지개 풍경(Your Rainbow Panorama)”이다. 덴마크 출신의 현대미술가 올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이 설계한 이 원형 보행 구조물은 도시를 무지개의 스펙트럼으로 재구성한다. 관람자는 같은 풍경을 전혀 다른 색채로 경험하며, 익숙한 도시를 낯설게 다시 보게 된다. 이는 단순한 전망대가 아니라 도시 인식 자체를 전환하는 장치다.
소장품 역시 이 건축적 경험과 긴밀하게 맞물린다. 18세기 덴마크 회화에서 현대 미술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컬렉션을 갖추고 있으며, 특히 북유럽 현대 미술과 대형 설치 작업에 강점을 보인다. 작품은 전시되는 것이 아니라 공간과 함께 작동하며, 미술관은 보관의 장소를 넘어 경험의 플랫폼으로 기능한다.
결국 이 미술관이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미술관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더 많은 작품을 모으는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내는 것인가. 아로스는 그 답을 하나로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건축과 예술, 도시를 하나의 순환 속에 놓는다. 관람자는 그 안을 걸으며 시선과 감각을 갱신한다.
오늘날 많은 도시가 상징적 건축을 원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형태가 아니라 관계다. 건축이 도시와 어떻게 연결되고, 사람의 경험을 어떻게 바꾸는가에 달려 있다. 이곳에서 건축은 배경이 아니라, 도시를 다시 보게 만드는 하나의 시선이 된다.
이상훈, 아트컨시어지 대표. 부산일보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