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미로 속에 갇힌 정의
영화평론가
영화 '두 검사' 스틸컷. 엠엔엠인터내셔널(주) 제공
국가 폭력은 종종 과거의 일로만 정리된다. 기록 속에 봉인되고, 기념일에만 호출되며, 더 이상 현재의 문제가 아닌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권력은 형태를 바꾸며 이어지고, 법과 제도라는 이름 아래 폭력은 종종 더 정교해진다. 그로 인해 누군가에게는 끝난 이야기일지 몰라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현재진행형이기도 하다. 세르히 로즈니차 감독의 ‘두 검사’는 바로 지속되는 폭력의 기원을 응시하게 만든다.
영화는 1937년 소련 대숙청이 한창이던 시대를 다룬다. 모스크바 남서쪽 브랸스크의 한 교도소에는 수많은 탄원서가 읽히지도 못한 채 난로에 태워지고 있다. 그러던 중 기적처럼 한 통의 혈서가 신임 감찰 검사 ‘코르니예프’에게 전달된다. 혈서를 쓴 사람은 원로 법학자 ‘스테프냐크’이다. 그는 스탈린 체제를 지탱하던 비밀경찰 기구 내무인민위원부(NKVD)의 공작으로 억울하게 수감되어 고문당하고 있다고 증언한다.
세르히 감독이 응시한 신입 검사의 여정
30년 만에 세상에 공개된 원작소설 바탕
영화 속 돋보이는 데칼코마니 연출
거대한 관료 시스템 속 인간의 무력함
‘두 검사’는 억울한 피해를 밝히고 정의를 회복하는 이야기처럼 보인다. 하지만 영화는 코르니예프를 억압적 체제와 대결하는 영웅으로 그리지 않는다. 감독은 이 시대의 문제를 몇몇 악한 개인이나 부패한 관리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시스템 전체의 구조로 확장해서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정의를 바로잡을 수 있다고 믿는 그의 신념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 드러낸다. 이제 코르니예프는 감찰 검사로서의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모스크바로 향한다. 하지만 그 여정은 해결로 나아가지 못하고, 권력의 중심부를 확인하는 과정에 가깝다.
영화 전반부는 교도소 내부를 파고든다. 그 공간은 복잡한 규칙과 절차로 가득 차 있고, 교도소 정문에서부터 스테프냐크가 있는 감옥까지 누군가의 허락 없이는 한 걸음도 내디딜 수 없는 폐쇄적인 곳이다. 게다가 겹겹이 열쇠로 잠긴 문들을 통과해야만 스테프냐크를 겨우 만날 수 있으며, 코르니예프 또한 누군가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다. 이를 통해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문 안에 있든 문밖에 있든 모두 제약 속에 갇혀 있음을 확인시킨다.
증거와 증언을 확인한 코르니예프는 곧바로 모스크바행 기차에 몸을 싣는다. 부패한 중간 관리자가 아닌, 체제의 최상층에 있는 검찰총장 ‘비신스키’가 정의를 회복해 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총장을 만나는 일은 쉽지 않다. 총장실을 찾아 계단을 오르내리거나, 접견 허가를 무한정 기다리거나, 무표정한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장면에서는 권력의 층위를 확인할 뿐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교도소와 검찰총장 관저가 서로를 옮겨놓은 듯한 데칼코마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영화 배경은 확장된 듯 보이지만, 본질은 여전히 밀실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런 의미로 코르니예프가 진실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믿는 모스크바는 해결의 장소가 아니다. 모든 결정이 내려지는 곳이며, 아래로 명령을 내리는 중심부에 가깝다. 그래서 그가 도달하는 곳마다 결정은 미뤄지고, 진실은 접수되지 않는다. 애초에 열리는 문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고 철창으로 가로막혀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영화는 거짓과 진실의 여부가 아니라, 시스템 안에서 모든 말들이 무화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실패로 끝난 여정에 집중하기보다는 거대한 관료 시스템으로 끌려 들어가는 인간의 무력함을 그린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는 시베리아 강제 수용소에서 14년 동안 수감됐던 우크라이나 출신 과학자 게오르기 데미도프가 쓴 자전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그의 원고는 1980년 KGB(국가보안위원회)에 의해 압수되었다가 2009년에야 세상에 공개되었다. 한 개인의 경험과 기억이 30년 가까이 봉인되었다는 사실이, 이 영화가 말하려는 폭력과 억압의 성격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어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