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동윤의 비욘드 아크] 애도의 공간, 생명의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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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지엔지니어링건축사사무소 대표이사

삼풍백화점 붕괴 장소엔 사고 표식 없어
베를린·뉴욕엔 안타까운 죽음 추모 공간
상처 드러냄으로써 새 관계 가능성 열어

하나씩 피고 지며 봄의 진행을 스펙트럼처럼 보여주던 꽃들이 올해는 한꺼번에 폈다. 순서를 무시하고 동시에 피어버리는 이 기형적인 현상 앞에서 아름다움보다 기후 위기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찬란하게 아름다워야 할 4월은 꽃 피기도 전에 떨어져 버린 슬픔의 시간을 머금고 우리 앞에 기억을 소환한다.

제주 4·3사건, 어제 12주기를 맞은 세월호 참사, 그리고 모레 있을 4·19 혁명 기념일. 이 사건들은 서로 다른 내용이지만 기억은 사회 속에서 어떻게 구성되는지, 더 나아가 어떤 미래를 만들어가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우리는 오랫동안 애도란 죽음을 정리하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기 위한 통과의례처럼 여겨왔다. 그러나 오늘날 애도는 ‘죽은 대상을 기리다’를 뜻하는 일반적인 추모가 아니라 타자의 슬픔을 느끼고 그 슬픔을 함께 극복하는 개념으로 변하고 있다. 그것은 더 이상 과거를 정리하는 행위가 아니라, 현재를 견디는 방식이자 미래를 구성하는 태도가 된다.

‘애도 불능 사회’란 상실과 죽음이 끊임없이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그 상실을 충분히 말하고 느끼고 기리는 장이 부재한 사회이다. 그 예로 삼풍백화점 붕괴 자리에 세워진 ‘아크로비스타’를 들 수 있다. 비극의 공간에서 재탄생한 고급 주거지 어디에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에 대한 표식이나 서사는 남아 있지 않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의 자리에 아무런 기억의 흔적 없이 일상이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은 사회가 특정한 죽음을 공적 기억으로 승인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동시에 그 죽음이 우리 삶의 조건을 바꾸지 못했음을 드러낸다. 기억되지 않는 죽음은 구조를 변화시키지 못한다. 과거와의 단절은 반복의 조건이 되어 세월호로, 이태원 참사로 이어졌다.

참사는 우연이 아니라 보이지 않던 위험이 표면으로 드러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참사 이후의 과정이다. 재난 현장에서 반복되어 온 통합 컨트롤타워의 부재, 신속한 구조의 실패, 그리고 책임의 불분명 등 시스템 단절의 패턴은, 사건은 달라도 대응은 놀라우리만치 유사하다. 슬픔은 있었지만, 그것이 구조를 재편하는 힘으로까지 나아가지 못한 것이다. 이는 사회의 기억이 제도와 공간의 서사로 이어지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재발 방지는 안전 기준 강화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감정의 환기와 이성적 성찰이 동시에 이루어질 때 애도는 비로소 사회적 힘을 갖는다. 이때 건축은 그것을 보여주는 장치의 역할을 한다.

베를린 ‘홀로코스트 기념물’에는 특별한 이름이 없다. 설계를 맡았던 미국의 건축가 피터 아이젠먼은 누군가에게는 묘비로, 누군가에게는 거대한 감옥처럼 느껴질 수 있는 재량을 부여하고 싶었다고 한다. 끝없이 반복되는 콘크리트 기둥들 사이로 걸어 들어갈수록 바닥은 낮아지고 비석이 높아지기 때문에 어느 순간 길을 잃은 듯한 압박감에 발걸음은 불안하게 된다. 기념비들은 질서 정연해 보이지만 나치 체제하에서 파괴된 인간상과 혼란을 느끼게 된다.

뉴욕의 ‘911 메모리얼 파크’ 역시 마찬가지다. 911 메모리얼 파크는 9·11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부재의 반추(Reflecting Absence)’라는 개념으로 설계된 추모 공원이다. 쌍둥이 빌딩 자리에 두 개의 사각형 반사풀을 두고, 풀 중심부로 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리게 해서 상실이 결코 봉합될 수 없음을 느끼게 한다. 그렇게 애도는 계속 흘러가는 시간과 함께 있음을 알게 되고 애도의 공간은 안타까운 죽음만을 기리는 건축물이 아니라 죽음을 통해 삶의 조건을 재구성하는 생명의 건축이 된다. 생명이란 단순히 살아 있음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관계 맺는 상태를 의미한다. 여기서 건축은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우리의 감각과 행동을 깨어있게 하는 사회적 학습의 매개체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상처를 지우지 않고, 오히려 그 상처를 드러냄으로써 새로운 관계의 가능성을 여는 작업이다. 애도의 공간이 살아 있는 이유는, 그곳이 과거를 보존하기 때문이 아니라 현재를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얼마 전, 달 왕복 비행을 마치고 돌아온 아르테미스 2호의 우주비행사 크리스티나 쿡은 “달 근처에서 지구를 바라보았을 때 지구는 우주 공간에 아주 고요하게 떠 있는 한 척의 구명정 같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구라는 행성에서 살고 있는 모두가 하나의 팀이라고 느꼈다고 했다. 그 시선에서 보면 우주 공간에 구명정처럼 떠 있는 이 행성은 거대한 애도의 공간일 수도 있겠다. 팀이란 무슨 일이 있어도 언제나 함께하는 사람들이다.

수많은 슬픔을 소환하는 이 봄, 안타까운 죽음들을 애도하며 우리의 감각과 행동이 찬란한 생명을 잉태하는 봄으로 깨어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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