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 대신 칼, 물감 대신 종이’로 표현한 회화의 깊이
프랑스 파리, 한국 오가며 작업
김춘환 개인전 ‘누아르 에 블랑’
다음 달 6일까지 데이트갤러리
데이트갤러리 전시장에서 포즈를 취한 김춘환 작가. 김은영 기자 key66@
‘그림은 직접 봐야 한다!’ 직접 봐야 그 느낌을 제대로 알 수 있다는 말이 실감 났다. 붓과 물감을 일체 사용하지 않고, 종이 덩어리만으로 회화의 깊이감을 이토록 표현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제 작품은 가까이서 보고, 멀리서도 보고, 좌우로 움직이면서 봐야 해요. 동선에 따라서 달라져서요. 영상이나 이미지로는 제대로 전달이 안 돼요. 예전엔 조각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점점 얇아지면서 지금은 회화 느낌이 강해요.”
2024년 전시 이후 2년 만에 다시 부산을 찾은 김춘환 작가가 이번엔 ‘흑과 백’ 시리즈로 돌아왔다. 부산 데이트갤러리(해운대구 해운대해변로 298번길 5, 2층)에서 열리고 있는 김춘환 개인전 ‘누아르 에 블랑’(Noir et blanc, 흑과 백)이다. 아주 가벼운 재료 종이를 통해 다소 묵직한 존재감을 표현하고 있다.
“흑백이라는 게 단순히 검게 칠했다, 희게 칠했다가 아니라 검은색과 흰색이 밀접하게 관련된 거죠. 검은색 부분을 잘라서 흰색이 나오게 하고, 흰색 부분을 잘라서 검은색이 나오게 한 거니까요. 칠한다기보다는 기존에 있던 걸 없애서 그 속에서 나오게 하는 겁니다. 이렇게 흰색 작업만 한 건 처음입니다.”
김춘환, undercurrent, 2026. 데이트갤러리 제공
대부분을 한국에 와서 끝냈다고 했다. 2년 전 전시만 해도 화려한 패션 잡지를 캔버스 패널 위에 빼곡하게 붙인 후 칼로 절단하는 방식의 작품이었는데, 이번엔 흑과 백의 강렬한 화면으로 바뀌었다. “이전에 썼던 재료보다 종이도 두께감이 있어서 커팅 방식이 달라졌어요. 정교한 회화보다 선이 굵은 추상의 느낌이 더 강해진 것 같다고 해야 할까요.”
최근에는 한국에 머무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 “예전에는 2~3년 만에 한국에 와서 전시만 하고 파리로 돌아갔는데 금세 잊히더라고요. 이젠 애들도 다 컸고, 한국에 적응을 좀 하려고요.” 서울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1995년 4월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 8대학에서 조형예술학 석사 학위를 받고 파리를 거점으로 활동한 지 만 31년이 됐다. 유럽 전시는 파리에서, 한국 전시는 인천에서 작업한 걸로 소화하는 중이다.
김춘환 개인전 ‘Noir et blanc’(흑, 백) 설치 전경. 김은영 기자 key66@
이번 작품 재료(종이)는 프랑스에서 공수했다. “소더비 책자 같은 프랑스 잡지나 고급 도록을 주로 사용했어요. 예전에 많이 사용하던 패션 잡지는 구하기도 쉽고 종이도 얇은 편이지만, 도록은 종이 자체가 두꺼워요. 한 번에 잘 안 구겨져요. 저는 잡지를 모을 때도 색깔별로 모으는데, 패션 잡지마다 미묘하게 색감이 다르거든요.”
그는 “정보의 홍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사물의 본질과 예술의 가치가 무엇인가 아는 건 중요하다”며 “작가도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알아야 내가 하는 이 작업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 알 수 있을 것”이라는 말로 마지막 인사를 대신했다. 전시는 5월 6일까지 열린다. 문의 051-758-9845.
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