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배달’ 넘어 ‘관계’ 흐르는 돌봄 공동체 부산으로
손지현 신라대 교수 한국지역사회복지학회 정책위원장
서비스 공급 체계 양적 강화 집중
돌봄 대상자 공동체로부터 유리
관계의 온도 높일 방안 고민해야
빈집을 ‘마을 사랑방’으로 재창조
주민 참여 부산 특화 모델 만들자
부산시는 3월 10일 시청 1층 대강당에서 ‘부산형 통합돌봄 비전 선포식’을 개최했다. 부산일보DB
“내가 나고 자란 이 동네에서, 마지막까지 이웃과 인사하면서 지낼 수 있을까?” 초고령사회 부산을 살아가는 시민들이 마음 한구석에 품고 있는 소박하지만 절실한 바람이다.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3월 27일, 우리 사회의 돌봄 지형을 바꿀 ‘돌봄통합지원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되었다. 전국 특·광역시 중에서 가장 먼저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부산시는 그간 ‘부산형 통합돌봄’ 체계를 다지며 준비된 도시임을 자부해왔다. 8대 특화 서비스를 확충하고 소득 기준을 완화해 더 많은 시민이 혜택받도록 한 것은 행정적 관점에서는 분명 의미 있는 진전이다. 이 과정에서 제기된 예산과 인력 확보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 역시 돌봄 도시로 나아가기 위한 건강한 진통으로 꼭 수용되길 기대한다.
하지만 법 시행이라는 물리적 지점을 넘어 우리가 마주한 진짜 숙제는 따로 있다. 지금 우리가 구축하고자 하는 시스템이 ‘사람과 사람의 연결을 통한 돌봄’이라는 본질을 제대로 담아내고 있는가에 대한 성찰이다. 현재 부산을 비롯한 전국의 돌봄 사업은 ‘서비스 공급 체계의 양적 강화’에 집중하고 있다. 개인이 필요한 서비스를 골라 누릴 수 있도록 다양한 바우처를 설계하고 제공 기관을 늘리는 방식이다. 물론 촘촘한 서비스망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서비스의 가짓수가 늘어나는 것에만 매몰될 경우, 돌봄 대상자는 공동체로부터 분리되어 집안이라는 물리적 공간에 ‘박제’될 위험이 크다. 식사 배달과 병원 동행이 신체적 불편함은 덜어줄지언정, 그들의 고립된 삶 자체를 치유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개인에게만 초점화된 서비스 제공 방식은 역설적으로 그들을 지역사회로부터 더 소외시키는 상황을 발생시킬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더욱 뼈아픈 지점은 우리 부산의 관계성이 갈수록 희박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는 주민 간의 관계가 낮아지고 있다는 현상적 평가를 넘어, 어떻게 다시 관계의 온도를 높일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과 대담한 시도가 정책의 중심에 서야 한다. 돌봄은 단순히 전문가가 수혜자에게 베푸는 시혜가 아니며, 동시에 판매와 구매로 이어지는 상품으로도 이해해서도 안 된다. 살던 곳에서의 안전한 생활은 이웃과 동료가 서로의 안부를 묻는 ‘관계의 힘’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사회복지, 돌봄, 의료, 교육, 주거 등 그동안 각기 다른 영역에서 진행되어 온 공동체 사업들을 이제는 하나의 커다란 돌봄 체계 안에서 결속시켜야 한다. 파편화된 사업들을 연결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지역사회 전체가 하나의 ‘돌봄 안전망’으로 작동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를 위해 고려해 볼만한 두 가지 방법을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공간의 재구조화를 통한 관계의 복원’이다. 부산의 고질적인 현안인 빈집을 단순한 정비 대상이 아닌, 돌봄 안심 주택이자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마을 사랑방’으로 재창조해야 한다. 의료와 복지, 교육 서비스가 이 공간을 매개로 융합될 때 공간은 비로소 사람을 모으고 관계를 만드는 토양이 된다. 둘째, ‘협력적 거버넌스의 실질적 가동’이다. 민·관·학을 포함하여 다양한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과정을 통해 개입의 효과를 키워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주민 참여를 위한 활동 소득(참여 소득)과 같은 방식의 직접적인 지원까지도 고려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돌봄 공동체를 구축하는 부산만의 특화 모델을 만들어가야 한다.
돌봄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공동체에서 살고 싶은가에 대한 대답이다. 아직 본격적인 사업 초반인 지금 부산시는 행정적 기반 구축이라는 시작을 넘어, 현장의 고립된 목소리와 단절된 관계에 다시 귀를 기울여야 한다. 서비스 종류를 늘리는 수치가 아니라 모든 시민이 서로를 돌보는 ‘관계망의 복원’에 모든 정책적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이웃과 안부를 나누며 존엄하게 생을 마무리할 수 있는 도시. 그것이 우리가 기대하는 진자 ‘부산형 통합돌봄’의 완성된 모습이자 지향점이다.
부산 사람이라는 건 살고 있는 곳이 부산이라는 것을 넘어, 부산에서 만들어진 관계망 속에서 지내는 사람이라는 뜻이지 않을까? 온전한 부산형 통합돌봄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