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의 시그니처 문화공간 이야기] 위스키가 건축이 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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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컨시어지 대표

아일라의 신화적 존재에서 착한 크로크 스킨 느낌의 벽지. 이상훈 제공 아일라의 신화적 존재에서 착한 크로크 스킨 느낌의 벽지. 이상훈 제공

스코틀랜드 서해안의 작은 섬 아일라. 이곳은 싱글 몰트 위스키 애호가들에게 성지로 통한다. 거친 대서양 바람과 해풍, 그리고 피트(peat)의 스모키한 향이 빚어내는 독특한 풍미는 아일라 위스키를 세계적인 아이콘으로 만들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강렬한 개성과 팬덤을 지닌 브랜드가 바로 아드벡(Ardbeg)이다. 1815년 설립된 아드벡은 오랜 역사 속에서 생산 중단과 소유권 변경이라는 부침을 겪었지만, 1997년 글렌모렌지의 인수 이후 브랜드는 재도약의 계기를 맞았고, 2004년에는 글렌모렌지가 글로벌 명품그룹 LVMH에 편입되며 세계적인 리소스로 시장에서 입지를 더욱 공고히 했다.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실험적 이미지를 강화해온 아드벡은 이제 위스키를 넘어 ‘경험’의 영역으로 발을 넓히게 된 것이다.

2025년 9월, 아일라 섬 포트엘렌에 문을 연 부티크 호텔 아드벡 하우스(Ardbeg House)는 그 상징적 결과물이다. 기존 호텔을 리노베이션해 12개 객실 규모의 부티크 호텔로 재탄생시킨 이 공간은 단순한 숙박시설이 아니다. 브랜드의 세계관을 건축과 인테리어로 구현한 일종의 체험 무대가 되었다. 외관은 마을 풍경에 조용히 스며들지만, 이 호텔의 진짜 이야기는 내부에서 시작된다. 인테리어를 맡은 러셀 세이지(Russell Sage) 스튜디오는 기존 건축을 해체하고 새로 짓는 과시적 건축물이 아니라, 기존의 건물 안에 아드벡의 정체성을 풀어 놓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이 방식은 아일라의 역사와 지역성을 존중하는 동시에, 위스키 문화의 감각을 공간으로 번역하는 시도이다.

“진지하게 장난치기”라는 모토 아래, 공간의 톤을 설정했다. 새로운 럭셔리 호텔들이 인스타그램용 세트처럼 소비될 위험이 있는 반면, 아드벡 하우스는 이야기와 감각으로 공간을 무장한다. 각 객실은 전설과 신화, 지형과 문화에서 영감을 받은 테마로 설계됐다. 구리 소재의 벽면 아트는 증류기와 생산 과정을 암시하고, 보트 모양의 샹들리에는 섬의 해양성을 공간 언어로 변환한다. 버튼을 누르면 스모키 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장치까지 있어, 피트 향이라는 비가시적인 요소를 물리적 경험으로 끌어온다.

위스키 관광은 단순히 증류소 투어를 마친 뒤 떠나는 경험이 아니라, 이곳에서 하룻밤 더 머물며 아일라의 계절과 풍경, 그리고 사람들과의 교감을 느끼는 오래된 기억으로 변화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콘셉트가 한 디자인 스튜디오의 상상력만으로 완성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스코틀랜드 현지 장인들의 참여는 공간에 물리적 설득력을 부여했고, 브랜드 서사를 지역성과 연결했다. 그들의 손길은 호텔을 단순한 테마 공간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장소로 고정시키는 힘이 된다.

아드벡 디스틸러리(증류소). 이상훈 제공 아드벡 디스틸러리(증류소). 이상훈 제공
아드벡 하우스 스위트룸 몬스터. 이상훈 제공 아드벡 하우스 스위트룸 몬스터. 이상훈 제공
아드벡 하우스 조식 레스토랑 내 문어조명. 이상훈 제공 아드벡 하우스 조식 레스토랑 내 문어조명. 이상훈 제공
포트앨런의 평범한 외형의 아드벡 하우스 외관. 이상훈 제공 포트앨런의 평범한 외형의 아드벡 하우스 외관. 이상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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