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별 거 아닌데 왜 아등바등 살았을까?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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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생뚱 엄변호사의 황금빛 노년 만들기/엄상익
70대 노변호사 동해 한적한 실버 타운 입주
노년기 인간 군상들의 속살 섬세하게 전해
어떻게 잘 늙어갈지 독자에게 던지는 고민

실버타운에서 만난 다양한 노인 군상의 모습을 통해 행복에 관해 깨달음을 소개하는 책이 나왔다.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실버타운에서 만난 다양한 노인 군상의 모습을 통해 행복에 관해 깨달음을 소개하는 책이 나왔다.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초고령화 시대, 중년이 된 형제, 자매가 나누는 고민의 양상이 비슷하다. 날로 쇠약해지는 부모를 누가, 어떻게 모셔야 하느냐를 두고 눈치 싸움이 시작된다. 저마다 팍팍한 현실을 토로하며 현재 상황에선 곤란하다고 토로한다. 그렇다고 가기 싫다는 요양원에 강제 입원시키는 건 자식의 도리가 아닌 것 같다. 부모 중 한 분만 계신다면 고민의 깊이가 더해진다. 이럴 때 ‘실버타운’이 대안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 실버타운이 들어온 지 세월이 꽤 지났지만 여전히 정보가 많지 않다. 초호화 시설을 자랑하는 고가의 실버타운 광고는 계속 나온다. 특별하지 않은 보통의 서민이 갈 수 있는 실버타운은 어떤 걸까.

40여 년 변호사로 살았고 그중 반은 신문 잡지 등 언론매체에 칼럼을 쓰며 글 쓰는 변호사로 잘 알려진 저자. 19년 전에 늦깎이 소설가로 등단하기도 한 저자는 70대 초반인 2년 전 동해 조용한 실버 타운에 입주한다. 좋은 풍경을 보며 글이나 쓰며 살자 싶은 마음이었다. 저자 스스로는 “세상과 떨어져 노인 나라로 건너왔다”고 표현했다.

책은 2년간 체험한 실버 타운에서 생긴 실화들과 이를 통해 깨달은 것들을 담고 있다. ‘저승 대합실’이라고 자조하는 노년기 인간 군상들의 속살을 섬세한 필치로 전달하며 생각과 다를 수 있는 실버타운의 생활을 담담하게 소개한다.

저자는 먼저 한적한 동해 바닷가에 위치한 실버 타운이 책 읽기, 글쓰기를 좋아하고 물을 좋아하는 자신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곳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무료한 지옥이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저자의 지인 여러 명이 구경삼아 실버 타운에 왔다가 경치는 좋지만, 자신들과 맞지 않는 것 같다며 그대로 돌아간 적도 있다.

실버 타운에서의 삶은 현세와 내세 사이에 존재하는 황혼의 틈새를 즐기려는 자세가 중요하며 그걸 잘하는 사람에게 만족감이 큰 곳이다. 저마다 어떻게 편안하게 죽을 것인지를 두고 입주자끼리 치열하게 토론하는 걸 보며 많은 걸 생각하게 된다.

실버 타운에서 만난 이들을 통해 저자는 “돈이 많다고, 땅이 많다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전문직을 가졌다고, 잘 생겨서 등 많은 이들이 연연했던 것들이 정작 삶과 상관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라고 말한다. 돈이 많아도 나이 칠, 팔십이면 소용없고, 건강해도 구십이면 의미가 없다고 한다. 두 다리로 걸어서 봄날 꽃구경을 다니고, 이가 좋을 때 맛있는 음식점을 찾아다니고, 눈이 괜찮을 때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귀가 들릴 때 아름다운 음악을 감상하고, 베풀 수 있을 때 남에게 베풀고, 즐길 수 있을 때 마음껏 즐기는 게 최고의 잘 사는 방법이라고 알려준다.

실버 타운 인근에는 젊은 부부들이 운영하는 작은 음식점들이 몇 곳 있다. 손맛도 좋아서 손님들이 많은 편이다. 그런데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만 운영한다. 그 시간이 지나면 손님이 와도 가게 문을 닫고 간다. 구세대인 저자의 시각으로는 그들이 왜 일을 하지 않는지, 들어오는 돈을 마다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단다. 자신의 세대는 일하다가 삶을 마감하는 걸 명예롭게 생각했다. 저자 선배 중에는 팔십이 넘었어도 새벽 5시면 양복을 입고 사무실에 출근해 신문이라도 봐야 마음이 안정된다고 하는 이가 있다.

자연계의 생물들은 먹기 위해 최소한의 활동만 하고 노는데 유독 인간만 일을 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일이 삶의 전부였던 그 시절의 삶이 과연 잘 살았던 것인지 새삼스럽게 의문이 든다고 고백한다. 실버타운에서 친해진 노부부는 “불행하지만 않으면 생활이 다 행복하다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세상의 잣대로 보면 이 부부는 행복하지만은 않다. 나이 먹었고, 부인은 눈이 많이 아프다. 공부하느라 결혼이 늦어져 아이도 없다. 그러나 순간순간 소소한 즐거움을 찾는 부부는 늘 행복하다고 했다.

2년간 실버 타운에서 만난 노인들의 공통된 후회가 있다. 인생이 별거 아닌데 왜 그렇게 아등바등 힘들게 살았는지,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자유롭게 살지 못한 것을 아쉬워한다. 저자의 실버타운 체험기는 젊은 세대에게 전하는 인생 꿀팁처럼 느껴진다. 엄상익 지음/답게/396쪽/1만 8000원.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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