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대학 지식·기술 담을 그릇 ‘동남권 지식재산청’ 설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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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원 부산대학교 총장


부산의 명산 금정산 자락에 자리 잡은 부산대학교 교정에 이른 봄을 알리는 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어제가 벌써 입춘(立春)이었다. 보름 뒤면 학사모를 쓴 제자들이 졸업식을 마치고 가슴 설레는 사회진출을 하게 된다.

그러나 매년 이맘때 졸업식 단상에서 학위 수여를 하는 총장으로서 제자들을 떠나보내는 마음이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 졸업식이 끝나면 이 빛나는 청춘, 우수 인재들은 고향을 버리고 썰물처럼 부산을 빠져나가 서울과 수도권으로 떠나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작년 말 해양수산부가 부산으로 이전하면서 지역에 활기가 돌고 관련 업계가 활성화되는 정책적 파급효과를 보면서 드는 생각이 하나 있다. 지역이 살아나려면 사람과 기업을 붙잡아둘 강력한 ‘앵커(Anchor) 기관’이 부산에 더 많이 들어설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전남 나주 혁신도시가 한국전력이라는 구심점을 통해 에너지 생태계를 구축했듯이, 국가균형발전 정책의 가장 중요한 핵심 축인 동남권에 ‘앵커’ 역할을 해줄 더 많은 공기관이 들어서는 것은 정책적 성공을 위한 전략적 중요성을 갖는다.

고등교육을 담당하는 대학의 입장에선 AI 시대를 맞아 대학이 생산하는 지식과 기술, 즉 ‘지식재산(IP)’을 더욱 활성화하고 뒷받침할 공기관의 지역 확대 설치가 무엇보다 절실하게 느껴진다. 이를테면 동남권 산업의 중심인 부산에 ‘동남권 지식재산청’ 형태의 기관을 설립하는 것이다. 마침 대통령께서도 특허청을 지식재산처로 승격시키면서 더욱 활발한 지식과 기술 거래 활성화를 강조하고 있다.

인공지능(AI)은 대학 연구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연구의 시대는 이제 지식재산의 시대로 전환되고 있다. 과거 연구 경쟁력이 논문의 수와 연구비 규모로 평가되던 시대가 지나고, 오늘날 대학의 연구 성과는 얼마나 신속하고 정교하게 지식재산으로 전환되고 또 산업과 사회로 확산되는가에 의해 평가된다.

AI 기술은 알고리즘, 데이터, 소프트웨어, 하드웨어가 결합된 복합 기술이다. 이러한 연구 성과는 논문 발표만으로는 보호될 수 없으며, 초기 단계에서부터 특허 전략과 권리 설계가 병행되지 않으면 기술의 가치가 급격히 저하된다. 그런데, 아무리 뛰어난 지식과 기술도 ‘권리’라는 단단한 갑옷을 입지 못한다면 냉혹한 시장에서 생존하기 어렵다. 대학 연구실의 혁신 기술은 ‘지식재산권’이라는 법적 권리로 확정되어야 비로소 자산이 된다. 이것이 지역 기업으로 이전되어 사업화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져야 지역산업 생태계가 자생력을 갖추게 된다.

그러려면 지식재산 행정의 지역 밀착이 요구된다. 심사관이 현장의 기계음 속에서 엔지니어와 머리를 맞대고 시제품을 확인해야 기술의 진가가 보이기 시작한다. 현장과 괴리된 지식재산 행정은 가치로운 대학의 기술 개발 속도를 둔하게 하고, 치열한 속도 경쟁을 벌여야 살아날 수 있는 기업들은 새로운 기술을 통한 혁신의 골든타임을 놓치게 한다. 하지만 그 중요한 연결고리가 되는 지식재산 관련 행정력은 현재 대전에만 머물고 있어 지역으로선 ‘너무 먼 당신’이다.

만약 부산에 동남권 지식재산청이 설립될 수 있다면 가져올 변화는 명확하다. 우선, 지역 이공계 석‧박사들에게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는 ‘앵커 직업’이 생기게 된다. 애써 키운 우수 인재들이 고향을 떠나지 않고도 국가 기술 주권을 지키는 핵심 인재로 지역에 정착하게 되고, 그러면 지역의 연구개발(R&D) 역량이 자연스럽게 두터워지게 될 것이다.

이와 함께, 기업의 기술 사업화 속도가 획기적으로 빨라질 수 있다. 지식재산 전문가인 심사관들이 가까운 지역 기업 옆에 상주하며 기술 개발 단계부터 밀착 컨설팅을 제공할 수 있게 되고, 지역 스타트업은 강력한 특허 포트폴리오로 무장해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게 된다. 기업의 성장은 다시 좋은 양질의 일자리로 이어져 혁신의 선순환과 지역발전, 국가균형발전의 완성을 앞당길 수 있게 된다.

지식재산 정책과 심사, 지원 등 행정 기능이 연구와 산업 현장 가까이에 결합된다면, 대학은 연구 초기 단계부터 보다 전략적인 특허 설계를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비단 부산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동남권 전체 대학과 지역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국가적 선택이 될 것이다.

지난 10년간 부산대가 국내외에 출원한 특허는 누적 약 4,500건에 달하고, 이 가운데 등록에 성공한 ‘강한 특허’의 비중이 절반에 이른다. 특히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해외 특허출원은 10년 전 대비 2.5배 이상 증가하고 있다. 성과가 있는 곳에 행정이 있어야 한다. 검증된 대학의 연구·특허 역량 위에 국가 지식재산 행정이 결합될 때, 그 효과는 극대화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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