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부산 재난안전, 이제는 공공서비스로
최홍배 국립한국해양대 교수·한국BC재난안전센터장
최홍배 한국해양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 2024.06.25 부산일보DB
부산에서는 침수·산사태·해안 재난이 반복되고 있다. 2022년 태풍 ‘힌남노’ 당시 기장군 정관 일대는 단시간에 침수됐고, 주민들은 대피 안내를 받지 못한 채 현장을 벗어나야 했다. 같은 해 해운대구 엘시티 인근에서는 낙석 사고로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이후에도 산사태와 도로 침하, 지하공간 침수 사례는 끊임없이 보고되고 있다.
이 사례들의 공통점은 명확하다. 위험 신호는 사전에 존재했지만, 대응은 사고 이후에 집중됐다는 점이다. 경보는 늦었고, 대피 과정은 혼란스러웠다. 사고가 지나간 뒤에야 “왜 미리 알 수 없었느냐”는 질문이 반복됐지만, 재난을 대하는 구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재난은 지나갔지만, 대응 방식은 그대로였다.
그럼에도 부산의 재난 대응은 여전히 사고 이후 복구와 행정 조치에 머물러 있다. 재난이 발생하기 전, 즉 예방과 준비의 시간은 제도적으로도 조직적으로도 충분히 채워지지 못하고 있다. 이 공백은 정부의 무능이나 시민의 부주의로만 설명할 수 없다.
행정은 모든 생활 현장을 상시적으로 관리하기 어렵고, 시민 역시 정보와 전문성, 지속성을 혼자서 갖추기 어렵다. 결국 문제는 개인이나 특정 기관이 아니라, 재난을 다루는 방식 그 자체에 있다. 부산의 재난안전 체계는 이제 ‘사건이 발생한 뒤 대응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상시적으로 작동하는 공공서비스로 전환돼야 한다.
첫째, 재난 예방은 생활권에서 시작돼야 한다. 재난은 행정구역이 아니라 사람들이 실제로 살아가는 공간에서 발생한다. 하천 인접 지역, 급경사지, 해안가, 고층 밀집 지역은 위험 유형이 서로 다르지만, 재난 교육은 여전히 획일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조심하라”는 경고만으로는 시민의 행동을 바꿀 수 없다. 침수 지역에는 대피 동선을, 산사태 지역에는 붕괴 전조를, 해안 지역에는 해일과 월파 위험을 알려주는 유형별·생활권 맞춤 교육이 필요하다. 재난을 막는 첫 단계는 거창한 장비가 아니라, 자신이 사는 공간의 위험을 정확히 아는 것이다.
둘째, 훈련 방식이 바뀌지 않으면 실제 대응도 달라지기 어렵다. 현재의 재난 훈련은 절차를 점검하는 수준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실제 재난은 새벽에 시작되고, 엘리베이터는 멈추며, 가장 취약한 이웃은 도움을 요청할 시간조차 확보하기 어렵다. 시민이 직접 경보를 받고 상황을 판단하며, 이웃의 안부를 확인하는 시나리오 기반 참여형 훈련이 필요한 이유다. 동 단위 자율 대응 체계와 안전통신망이 결합될 때, 공무원이 현장에 도착하기 전의 골든타임을 시민 스스로 지킬 수 있다.
셋째, 기술은 현장에 닿을 때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 AI와 데이터, 센서 기술은 이미 충분히 발전했다. 문제는 이 기술이 실제 생활 현장에서 작동하느냐다. 하천 수위와 강우량 정보가 단순한 숫자에 머무는 한 기술은 무력하다. 그것이 “지금 어디가 위험한지”로 해석되고 전달될 때, 기술은 비로소 생명을 지키는 도구가 된다. 이를 위해서는 행정이나 기업 단독의 접근을 넘어, 공공성과 현장성을 동시에 이해하는 중간 영역의 조정과 실험이 필요하다.
재난은 도시의 약점이 아니라 도시의 품격을 드러내는 기준이 될 수 있다. 부산이 단지 해양 관광도시를 넘어, 재난을 관리하고 회복하는 도시로 인식된다면 그것은 새로운 경쟁력이 된다. 재난을 숨기는 도시는 취약하지만, 대비하는 도시는 신뢰를 얻는다. 재난은 더 이상 일회성 사건이 아니다. 재난안전은 상시적으로 제공돼야 할 공공서비스다. 예방·교육·훈련·기술이 일상 속에서 작동하는 구조를 만들지 않는 한, 부산의 재난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제는 구호가 아니라, 실제로 작동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