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달식의 일필일침] 부산 무형유산 전승자 재평가가 시급한 이유
논설위원
전승자 개입 불미스러운 사건 잇따라
시의회 관련 조례 개정 늦었지만 진전
지속적 책임·공공성 확보 방안은 미약
심의 위원회 등 실질적으로 작동 않아
재평가 시스템 통해 단계적 조치 필요
공정한 점검과 지원 구조가 전통 살려
무형유산은 여러 세대에 걸쳐 사람들의 삶 속에서 축적·전승돼 온 노래와 의례, 기술 등으로 한 사회의 정체성과 기억을 담은 문화적 자산이다. 국가나 시도 자치단체가 지정한 무형유산 전승자는 유산의 원형을 온전히 익혀 이를 다음 세대에 전할 공적 책임을 지닌 존재다. 현재 부산시에는 무형유산 전승자(보유자 포함) 32명을 비롯해 전승교육사와 명예보유자들이 활동하고 있다. 시는 보유자에게 매달 145만 원의 전승지원금을 지급해 전통기술과 예능 보존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들은 개인의 기량을 넘어 사회가 지켜야 할 공공의 문화자산을 대표한다는 상징성과 그에 걸맞은 책무를 함께 짊어진다.
이런 점에서 근래 부산에서 발생한 시 무형유산 전승자 폭행 사건은 결코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니다. 이를 개인의 일탈로만 보기 어려운 것은 관리와 점검이 미흡한 제도적 환경 속에서 유사한 문제가 반복돼 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8월에도 무형유산 기능 종목 교육관인 부산전통예술관에서 또 다른 전승자 관련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해 지역 전통문화계에 충격을 줬지만 이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성찰이나 개선보다는 외부 노출을 막는 데 급급했고, “당사자가 곧바로 사과했다”는 해명으로 관리 체계의 책임은 비켜 갔다. 그로부터 한 달여 만에 이번엔 폭행 사건이 벌어졌다는 점에서 이를 단순히 우연이라고 치부하기는 어렵다.
이런 상황 속에서 부산시의회가 지난해 말 전승자에 대한 자격 기준을 강화하는 조례 개정안을 통과시킨 것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친 격’이지만 그나마 의미 있는 진전이다. 범죄 경력 조회 근거를 조례에 명시하고 결격 사유를 구체화 해 그동안 반복적으로 지적돼 온 법적 공백을 일정 부분 메웠다. 하지만 여전히 부족한 측면이 없지 않다. 개정된 내용은 전승자 사전 심사에 무게를 두고 있고, 지정 이후의 지속적 책임성과 공공성을 확보할 수 있는 재평가 또는 인정 해제 사유, 전승자 관리 등에서 미약하기 때문이다.
현장에는 무형유산 전승자가 한 번 인정되면 평생 그 지위가 보장된다는 인식이 깊게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현행 ‘무형유산의 보전 및 진흥에 관한 법률(무형유산법)’은 금고 이상의 형 확정, 결격 사유 발생, 국적 상실, 지정 해제 등의 경우 전승자 인정을 해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당연히 개정된 부산시 조례에도 이런 내용이 반영돼 있다. 이를 보더라도 전승자 지위는 영구불변의 특권이 아니란 얘기다. 그럼에도 현실에서는 이 규정들이 거의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게 문제다. 지역의 문화 관련 한 전문가는 “인정 해제 조항은 존재하지만 그 이전 단계인 부산시무형유산위원회 심의 등 재평가 시스템이 실질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게 문제”라고 말한다. 적어도 전승자가 실제로 제자를 양성하고 있는지, 전수 교육이 형식에 그치고 있지는 않은지, 공동체와의 관계가 건강한지 등을 묻는 장치가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번 사건은 바로 그 공백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준다.
그렇다고 재평가가 반드시 누군가를 퇴출하기 위한 칼날이 되어야 한다는 건 아니다. 다만 전승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관리 장치로 작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평가 기준 역시 전승자의 기량 하나로는 충분하지 않다. 전승 실적이나 전수 교육 여부, 제자 양성, 공동체와의 협력 관계, 윤리적 문제 발생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 이를 통해 개선 권고, 징계, 지원 조정, 활동 범위 제한, 명예보유자 전환, 인정 해제 등의 조치로 나아가야 한다. 평가 주체 역시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운 외부 전문가 중심으로 구성돼야 한다.
재평가는 통제가 아니라 행정 절차이며 제도는 신뢰를 확보하기 위한 최소 요건이다. 부산시는 이미 그 첫걸음을 뗐다. 범죄 경력 조회와 결격사유 명문화는 그 출발선이다. 이제는 조례 개정을 넘어 내실 있는 운영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그 시작이 바로 정기적인 재평가와 전승 실적의 체계적 관리다.
일찍이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무형유산의 가치는 기술 그 자체보다 그것을 체득하고 실천하는 인간, 더 나아가 삶의 태도와 전승의 과정에 있다”고 했다. 기술적 성취가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개인의 품성과 공공성이 결여된다면 시민의 신뢰와 지지는 결국 거두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전승자들은 직시해야 한다. 전통은 기술이 아니라 삶의 질서이며 예술은 인간의 품격을 떠나 존재할 수 없다.
무형유산은 과거를 지키는 일이다. 그러나 제도는 미래를 향해야 한다. 아무것도 묻지 않는 것이 전승자를 보호하는 길이 아니다. 공정하게 묻고 필요한 지원을 보완·개선하는 구조만이 전통을 살린다. 재평가는 불신이 아니라 책임의 확인이다.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