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운 유치원생인 줄 알았던 라니에게 숨겨진 비밀은…
그림책 '단풍반 정라니'
뭉클한 반전 스토리 감동
전시회 작품 연상 '겨울빛'
가족의 포근한 일상 전달
<단풍반 정라니> 삽화. 풀빛 제공
과거엔 그림책은 읽기에 서툰 아이들의 독서 입문용으로 인식되었다. 시대가 변했고 이제 출판계에선 그림책을 완전히 독립된 하나의 장르로 분류한다. 당연히 어린이 대상 책으로 한정하지 않으며 실제로 작가들도 어린이, 어른 모두 공감할 수 있는 내용과 메시지를 골라 책을 쓴다. 최근 출간된 그림책 중 놀라운 반전과 뭉클한 감동을 지닌 그림책과 뛰어난 그림과 정돈된 이야기가 더해 미술 전시회가 떠오를 정도로 아름다운 그림책을 골랐다.
<단풍반 정라니> 삽화. 풀빛 제공
<단풍반 정라니> 삽화. 풀빛 제공
<단풍반 정라니> 삽화. 풀빛 제공
■평범해 보이지만 뭔가 이상한 정라니의 정체는?
단풍반 정라니는 오늘 아침에도 부스스 눈을 뜬다. 엄마가 얼굴을 씻겨 주고, 이를 닦아 주고, 머리를 빗겨 주고, 아침밥을 먹여 준다. 엄마가 골라 준 옷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직접 고른 옷을 입고 엄마와 헤어져 셔틀버스를 타고 단풍반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간다. 단풍반에서 친구들을 만난 라니는 가벼운 스트레칭과 실내 운동도 하고 점심시간에 밥도 맛있게 먹는다.
기상부터 단풍반 이야기까지 귀엽고 사랑스러운 그림 덕분에 책에 몰입하게 된다. 유치원생의 일상인가 싶었는데 책을 읽을수록 뭔가 일반 유치원과 다른 모습들이 발견된다. 한쪽에서는 바둑을 두고 또 다른 책상에선 화투 놀이를 한다. 어린이들이 할 만한 놀이가 아닌데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다. 오후가 되자 라니는 엄마를 얼른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마침내 셔틀버스를 타고 돌아갈 시간이다.
셔틀버스에서 내린 라니는 앞서 등장한 귀여운 소녀 라니가 아니다. 노을 어르신 돌봄센터에서 내리는 할머니로 변신했다. 앞서 라니의 엄마로 등장했던 성인이 “엄마 오늘 어땠어? 재미있었어?”라고 묻고 함께 기다리던 학생은 반갑게 “할머니”라고 부른다.
평범한 아이, 정라니의 일상을 따라 읽어간 책의 마지막은 반전이다. 처음 읽었을 때 약간 충격이었다. 그러다 다시 맨 첫 장으로 되돌아가서 다시 읽게 된다. 정라니의 정체를 알고 나서 두 번째 읽는 책은 완전 새롭게 느껴진다. 각 장면의 그림마다 숨겨진 힌트를 그제야 발견한다. 책은 주인공은 정라니지만, 두 번째 읽게 되면 첫 번째 읽었을 때와 완전히 다른 정라니를 만날 수 있다.
아이의 이야기이자 어른의 이야기이고, 자식의 이야기이자 부모의 이야기이다. 귀여운 그림에 반해 책을 펼쳤다가 마지막 메시지에 울게 된다. 장성은 글·그림/풀빛/32쪽/1만 6800원.
<겨울빛> 삽화. 사계절 출판사 제공
<겨울빛> 삽화. 사계절 출판사 제공
<겨울빛> 삽화. 사계절 출판사 제공
■계절의 빛과 감각을 품은 그림의 매력
이 책은 한 가족이 집으로 향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엄마는 퇴근 후 먹을거리와 아이의 선물을 사서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간다. 아빠는 사무실에 홀로 남아 야근하다가 버스를 타고 퇴근한다. 아이는 놀이터에서 눈을 갖고 신나게 놀다가 집으로 돌아온다. 특별한 사건도, 놀라운 반전도 없이 단순한 이야기이다. 심지어 두 페이지에 한 문장의 글만 있다. 그런데 이 책이 왜 특이할까.
하늘에서 사락사락 내리는 눈, 차가운 바람에 날리는 입김, 차창 너머 떠오르는 불빛, 눈길을 걷는 발소리, 방 안을 채우는 상큼한 냄새 등 추운 겨울밤의 정취와 감각을 그림으로 고스란히 전달한다. 과감한 구도와 빛, 섬세한 표현력은 독자를 순식간에 그 장소로 데려가는 기분이다.
눈이 녹아 번지는 빛, 달리는 차창에 흔들리는 빛, 거리에 새어 나오는 빛, 집 안을 감싸는 빛, 도시의 화려한 빛과 집의 부드러운 빛 등 겨울의 빛을 하나하나 묘사하며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가족의 포근한 일상을 전달한다.
전시회 작품을 모은 것처럼 페이지마다 등장하는 그림은 여운이 길다. 자꾸 보고 싶게 되는 매력이 가득하다. 그림책이면서 동시에 화집이기도 하다. 간간이 나오는 담담한 문장은 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소장 가치가 높은 책이다. 문지나 글·그림/사계절출판사/48쪽/1만 6800원.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