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라는 말 속에 똬리 튼 경계와 배척

김희돈 기자 happy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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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계 없는 소설 /성해나 외 5명

성해나 '괸당', 전춘화 '블링블링 오 여사' 등
경계 오가는 사람들 등장 단편소설 6편 수록

"다문화 감수성 배울 수 있는 작품 찾아 보자"
학교에서 다문화 담당하는 교사 6명이 기획
출판사에 제안해 '테마 소설 시리즈'로 결실

영국 사회의 이민자 갈등 문제를 따뜻한 시선으로 다룬 켄 로치 감독의 '나의 올드 오크' 스틸컷. 영화사 진진 제공 영국 사회의 이민자 갈등 문제를 따뜻한 시선으로 다룬 켄 로치 감독의 '나의 올드 오크' 스틸컷. 영화사 진진 제공
한국인 이민자 가족의 미국 정착기를 그린 정이삭 감독의 '미나리' 스틸컷. 판씨네마 제공 한국인 이민자 가족의 미국 정착기를 그린 정이삭 감독의 '미나리' 스틸컷. 판씨네마 제공

제주에 사는 ‘나’와 아버지는 북카자흐스탄에서 관광 온 고려인 재종숙 부부를 반나절 동안 안내하기로 한다. 촌수로 따지자면 남이나 다름없지만 아버지는 그들 또한 ‘괸당’이니 잘 대접해야 한다고 말한다. 괸당은 집성촌이 발달한 제주의 끈끈하고 촘촘하게 결속된 친인척 관계를 뜻하는 방언이다. 실제로 ‘나’의 괸당들은 고려인 강제 이주와 제주 4·3사건의 역사적 아픔을 매개로 재종숙 부부와 정을 나누는 듯 보인다. 그러나 재종숙 부부가 제 부친의 뼈를 고향 땅인 제주에 묻고자 노동 비자를 얻으러 왔다고 고백함과 동시에 괸당들은 그들을 경계 너머로 배척한다.(성해나 작가의 ‘괸당’)

‘왜 우리는 누군가에겐 관대하면서도 누군가에겐 한없이 매정해질 수밖에 없는지’를 묻는 단편 소설 6편을 묶은 소설집 <경계 없는 소설>에 실린 작품 중 하나다. 책에 수록된 6편은 모두 우리 경계 밖의 낯선 곳, 낯선 이와 만나는 이야기들이다.

조해진 작가의 ‘문주’는 해외로 입양된 주인공 ‘문주’가 다큐멘터리 촬영 요청을 받고 한국에 머물면서 자기 이름의 뿌리를 찾으려는 과정을 담고 있다. 김다은 작가의 ‘내 이름은 프리’는 한국에 사는 ‘나’와 미국에서 여행 온 ‘변’이 언어 장벽과 숨기고 있는 아픔으로 소통하지 못하다가, 조각 작품을 함께 만들며 마음을 털어놓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김이환 작가의 ‘고양이의 마음’은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 우후루에 내전이 벌어지면서 주인공 ‘장 사장’이 귀국을 위해 벌이는 소동을 그렸다. 한소은 작가의 ‘국경’은 여섯 명의 사람이 국경을 넘어 밀입국하려는 과정을 담은 작품이다. 버스 뒷좌석 좁은 비밀 공간에 숨은 그들의 절박한 심정이 잘 그려졌다.

가장 관심이 가는 작품은 조선족 전춘화 작가의 ‘블링블링 오 여사’였다. 한국에서 소설가가 되려는 딸을 위해 느지막이 한국으로 이주해 간병인으로 일하는 조선족 오봉선의 일상을 그린 소설이다. 2003년 호밀밭에서 나온 작가의 첫 소설집 <야버즈>에 수록됐다. 야버즈는 오리의 목에 붙어 있는 고기로 중국에서는 친숙하지만, 한국인에게는 베이징오리구이와 달리 생경하기만 하다. 전춘화의 소설은 야버즈처럼 낯설고 이해할 수 없는 이방인 조선족의 자리를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이웃의 자리로 옮겨 놓은 작품이다.


소설집 '경계 없는 소설' 표지. 소설집 '경계 없는 소설' 표지.

이처럼 소설집 <경계 없는 소설>에 실린 여섯 작품에는 제목과 달리 우리 사회 곳곳에 그어진 경계를 오가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공동체 구성원들은 기쁨과 슬픔을 나누며 끈끈한 유대감을 형성하지만, 이런 결속력이 때로는 높고 배타적인 벽으로 작용한다. 책은 그런 벽을 넘나들어야 하는 이들과 낯선 곳에서 새 터전을 일구는 존재들, 그리고 뿌리를 찾아 다시 돌아오는 사람들의 여정을 통해 ‘우리’와 ‘다문화’라는 말의 의미를 되묻는다.

창비교육의 ‘테마 소설 시리즈’ 열네 번째로 묶인 이 책은 경기도 안산시의 학교에서 다문화 업무를 하는 한 교사의 제안으로 기획됐다. ‘다문화’라는 단어가 단순히 이질적인 문화의 물리적 공존을 뜻하는지, 누구의 관점에서 이질적인지, 이질적이라는 말에 혹여 일방적인 의미가 내포된 건 아닌지, 그리고 다문화를 교육한다는 건 어떤 형태로 가능한지 등을 고민하던 인근 지역 교사 다섯이 뜻을 같이했다.

여섯 명의 교사는 다문화 교육이 단순히 다양한 문화를 소개하거나 공존을 강조하는 것을 넘어, 차이에 고정 관념을 갖지 않고 상대의 입장을 고려하면서 문화적으로 공감하는 능력과 태도인 ‘다문화 감수성’을 반영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곧이어 이들은 다문화 감수성을 고민하고 배울 수 있는 소설을 찾아 여러 차례 토의를 거쳐 여섯 편을 선정했다.

작품들은 각각 다른 시기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단행본에 수록된 단편 소설이다. 출간을 허락한 작가와 출판사 모두에게 감사드린다고 밝힌 창비교육 관계자는 “이 책이 ‘진짜 ‘우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성해나 조해진 김다은 전춘화 김이환 한소은 지음/창비교육/216쪽/1만 7000원.


김희돈 기자 happy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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