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Merry 해수mas'
이호진 경제부 선임기자
설마했던 해수부 부산 이전
딱 6개월 만에 현실로 눈앞에
북극항로 등 국정과제 힘 모아
부울경 착근이 곧 세계화 되길
살면서 꿈이 현실이 되는 경험, 몇 번이나 할 수 있을까. 7대 특·광역시 중 최고 수준의 초고령화율(24.5%), 특·광역시 중 최초의 소멸위험 단계(2024년 3월 기준 0.49) 진입. 온통 잿빛이던 부산 뉴스에 생기가 돌기 시작하는가 싶더니 밤이 가장 긴 동지 다음 날 해양수산부가 개청식을 열었다.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기에 좋은 날이었다.
중앙정부부처 중 홀로 부산에 터를 잡고 개청식을 여는데, 대통령실과 모든 국무위원이 출동해 힘을 싣는 모습을 온 시민과 국민이 지켜봤다. 올해 초 당시 이재명 후보가 해수부 부산 이전을 공약할 때만해도 많은 시민들은 “별 공약을 다 한다” “또 공약만 해놓고 안 지키겠지” 하는 반응이 다수였다. 2012년 대통령 선거때도 박근혜 후보는 이명박 정부에서 분해된 해수부를 다시 복원시키고, 부산으로 옮기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시민들은 해수부 복원에 만족해야 했다.
올해 이 후보 공약을 보면서 많은 이가 또 ‘빌 공(空)자 공약’ 이겠거니 한 것은 정치인에 대한 불신뿐 아니라 그 사이 우리나라 수도권 집중이 더 심화됐다는 현실 때문이기도 했을 터. 하지만 불과 6개월 만에 민간 건물 두 동을 빌려 800여 명의 사람과 청사 전체를 옮기는 실행력을 목도했을 때, 많은 시민은 놀라움을 금하지 못했던 것 같다.
한때는 없애도 문제없는 부처로 인식됐던, 이곳저곳 옮겨 다니기 바빴던, 조직 규모나 예산 면에서 전체 정부부처 중 아직도 막내 자리 언저리를 맴도는 해수부가 부산에 완전히 뿌리내리러 왔다. 서울, 포항, 영도, 세종을 거쳐 이제야 제자리를 잡은 해수부 표지석의 궤적이 어쩌면 해수부가 그동안 거쳐온 굴곡진 역사를 대변할지도 모르겠다. 해수부가 세월호 참사와 한진해운 파산을 겪으며 내상이 깊다는 사실을 많은 국민은 안다. 마침 내년은 한진해운 파산 10주년 되는 해이기도 하다. 기념할 일은 아니지만 기억은 꼭 해야 한다.
글로벌 물류망과의 연결을 책임지는 국가 해운산업의 공공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정부 결정으로 당시 선복량 세계 7위 국적선사는 공중분해됐다. 당시 세계 13위 수준이던 현대상선을 올해 8위 HMM으로 키우는 데 엄청난 공적자금이 들어갔다.
밤이 가장 긴 올해 동지까지가 그런 해수부였다 치자.
마침 내년은 부산항 개항 150주년이 되는 해다. 영욕의 세월을 뒤로하고 영예로운 미래 150년을 열어갈 첫해다.
지구온난화에 의한 북극 해빙은 북극해를 새로운 글로벌 물류 루트로 부상시키고 있다. 북반구에선 유럽~아시아, 유라시아 대륙~미주 대륙을 연결하는 가장 빠른 루트가 북극항로다. 북극항로 개척을 책임지는 해수부 역할이 막중하다.
연관 부처와의 협력은 물리적 거리가 떨어지더라도 범정부 국정과제 차원에서 잘 해나가리라 믿는다. 해수부 부산 시대의 의미는 바로 산업현장과의 소통 확대에 있다. 실제 북극항로 시범운항을 맡을 해운선사와 해기사, 조선사와 기자재업체 등 산업현장과 인력이 몰려 있는 부울경에서 과거보다 훨씬 밀도 있는 소통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관건이다. 지역 일자리와 산업 육성에 목마른 지방자치단체들과의 협력도 마찬가지다.
해수부 홀로 고뇌에 찬 결단으로 북극항로 개척을, 해양산업 탈탄소·디지털 대전환(2DX)을 책임지라는 얘기가 아니다. 업계, 연구기관, 지자체, 정치권, 대학 등이 함께 해양수도권, 북극항로 경제권 구축에 동참하도록 거버넌스를 만들고 역할을 서로 나눠 수행하자는 것이다. 부산시를 비롯해 해수부를 맞이하는 부울경 각 주체들도 이전과는 다른 자세로 지역 해양 현안과 과제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
그리 된다면 해수부는 더 이상 외롭지 않다. 위축될 것도 없다. 오히려 다른 부처 공무원들이 부러워할, 국내를 넘어 세계를 무대로 뛰는 글로벌 정부 기관이 될 수 있다. 부울경도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번영의 기회를 맞이할 수 있다.
마침 오늘 크리스마스다. 오늘부터 해수부와 해양수산가족 모두에게 즐거운 나날이 이어지기를 기원한다. 긴박한 일정에 부처 이전 격무에다, 가족과의 생이별을 묵묵히 감내한 해수부 직원들의 노고에 위로와 감사를 전한다. 내년 창립 30주년을 맞는 해수부가 다가올 새로운 30년과 그 이상의 시간을 잘 설계해 나가리라 믿는다. 현장과 시민이 바로 옆에서 든든히 받쳐줄 것이다. ‘Merry 해수mas’. 그리고 올해도 수고 많았던 해양수산가족, 부울경 시민 모두 행복을 누리는 새해 맞이하기를 기원한다.
이호진 기자 jiny@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