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욱의 글로벌 산책] 세밑에 불확실성의 해를 돌아보다
국립부경대 국제지역학부 교수
2025년은 ‘불확실성’이 더 이상 수사가 아니라 일상의 질서를 규정하는 새로운 실체적 환경이 된 해였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발 통상 규범 재편, 에너지 공급망의 요동, 기후변화 대응의 후퇴, 세계 각지의 전쟁과 세계 각국의 극단주의 세력 부상이 불러온 지정학적 긴장, 그리고 아시아·아프리카·유럽에서 터져 나온 세대 갈등이 겹치며 국제 질서에서 ‘예측가능성’의 가치는 마치 박물관에서 찾아봐야 할 정도로 희귀한 것이 되었다.
학자들이 늘 강조해 온 ‘미국은 시스템에 의해 움직이는 국가’라는 명제는 1월 20일 트럼프 대통령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설득력을 잃었다. 한 국가 지도자의 성향이 세계 질서의 규칙과 속도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더 이상 이론이 아니라 현실로 확인했다.
트럼프의 약탈적 통상의 충격부터
거리로 쏟아진 청년층의 분노까지
새해엔 균형·가치 지킬 수 있기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수십 년간 국제무역을 지탱해 온 WTO 중심의 다자주의는 사실상 기능을 상실했고, 강대국의 정치적 의지가 규칙을 대체하는 새로운 질서가 자리를 잡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국 관세를 외교·안보·산업정책의 도구로 삼아 국가 간 교역을 ‘상호이익의 장’이 아닌 ‘양자 흥정의 장’으로 만들었다. 그 결과 무역 질서는 보편적 규범을 잃고 국가 간 체급과 영향력이 규칙을 결정하는 일방적 구조로 재편되었다. 이 흐름 속에서 한국과 미국 양국 정부가 공식 서명하고 의회가 비준한 한미 FTA마저 무력화되었다. 이는 단순한 정책 조정이 아니라 전후 질서를 떠받쳐 온 다자주의의 후퇴이자 글로벌 공공재의 해체라는 의미를 지닌다.
2025년 국제 질서를 규정한 또 하나의 축은 에너지 안보였다.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와 중동 불안정이 겹치며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변동성이 심화되었고, 주요 수송 경로가 지정학적 위험에 노출되자 각국은 더 높은 비용을 감수하며 안정적 조달 확보 경쟁에 나섰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은 기후 거버넌스에 결정적 타격을 주었다. 2025년 1월, 트럼프 대통령은 파리협정에서 미국이 재탈퇴한다고 선언했다. 또한 탄소감축 의제와 기후협력 메커니즘에도 깊은 균열이 생겼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제해사기구(IMO)의 선박 탄소세 도입을 ‘녹색 사기’라 비난하며 반대했고, 탄소세에 찬성하는 국가에 대해 관세 부과, 항만 입항 금지, 비자 제한, 정부 계약 금지, 항만 수수료 인상 등 다양한 제재 가능성을 경고했다. 미국의 이 같은 압력으로 인해 IMO의 선박 탄소세 도입은 1년 연기되었다. 기후변화를 부정하고 기후변화 대응에 대한 재정 지원을 축소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 속에서 전임 바이든 행정부의 IRA는 사실상 무력화되었다. 결국 전임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을 믿고 미국에 투자한 우리나라를 비롯해 일본·유럽의 기업들만 큰 손실을 떠안게 됐다.
2025년의 불확실성은 국제 정세를 넘어 사회 내부의 균열로 확산되었다. 유럽에서는 청년층이 주거비·교육비·불안정 노동에 짓눌린 채 ‘기회 없는 성장’을 호소했다. 고령사회 진입이 본격화하면서 청년층의 노년층 연금 부담이 급증했고, 대부분 선진국의 확장적 재정 정책으로 청년 세대에 떠넘겨질 국가 부채 역시 증가하였다. 청년층은 결국 ‘부모 세대를 떠받치지만 자신은 누구에게도 받쳐지지 못하는 세대’라고 자기 세대를 규정하면서 좌절감에 휩싸여 분노를 표출하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개발도상국의 상황은 더 격렬했다. 고물가·실업·부패 속에서 청년층은 미래를 빼앗겼다는 절망감으로 거리로 나섰고, 일부 개발도상국에서는 대규모 청년 시위가 대통령 사임과 군부 개입이라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또 다른 일부 국가에서는 청년 항의가 조기 총선과 정권 교체로까지 이어졌다. 청년층의 절망이 한 국가의 정치 체제를 직접 흔든 한 해였다.
2025년은 다사다난하다는 말로도 부족한 해였다. 국제 질서는 흔들렸고, 경제와 사회는 새로운 균형을 찾지 못한 채 요동쳤다. 그러나 이 같은 혼란이 남긴 교훈은 분명했다. 불확실성은 피할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관리하고 준비해야 할 새로운 시대적 환경이라는 것이다.
2026년의 문턱에서 우리는 다시 길을 묻는다. 더 신중한 판단과 깊은 성찰, 그리고 함께 나아갈 힘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한 지금, 새로운 한 해의 시작은 단순한 시간의 교체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방향을 선택할 것인가를 다시 묻는 질문의 장이 된다. 바라건대 2026년은 갈등보다 협력이, 불안보다 신뢰가 더 앞서는 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불확실성이 일상화한 격변의 시대 속에서도 우리가 지향하는 균형과 가치가 흔들리지 않고, 모두의 희망을 모아 새해에도 굳건히 지속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