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외국인이 '살아가는' 부산은?
김동주 경제부 차장
여행객의 도시 너머 '정주 현실' 짚어봐야
주거·행정·의료·관계 등 생활 장벽 줄줄이
다가치·HIBA, 새로운 생활 연결망 보여줘
이웃·시민으로 받아들이는 관점 전환 필요
부산에서 외국인 커뮤니티를 취재하면서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 ‘여행객’으로서의 부산이 아니라 ‘사는 사람’으로서의 부산은 훨씬 복잡하다는 점이다. 관광객에게는 화려하고 편안한 도시가, 정주 외국인에게는 하루하루를 스스로 해석해야 하는 도시가 된다. 어디에서 살아야 하고,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하고,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 각자가 직접 찾아야 한다. 길을 찾는 문제를 넘어, 삶의 규칙을 해독해야 하는 도시인 것이다.
부산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은 연내 300만 명 돌파가 무난할 것으로 예상될 만큼 꾸준히 늘고 있지만, 이 도시에서 ‘살아가는’ 외국인이 어떤 경험을 하고 있는지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들이 가장 먼저 마주하는 장벽은 주거 문제다. 방을 보러 갔다가 이유 없이 거절당하기도 하고, 계약 조건을 제대로 안내받지 못하거나, 아예 계약을 위한 접근조차 되지 않는 주거지도 있다. 어렵게 집을 구한 뒤에는 행정 용어의 낯섦, 일상 정보의 부족, 의료·금융 서비스 접근의 어려움, 지역사회와의 연결 부재 같은 문제들이 차례로 등장한다. ‘살아간다’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문턱을 넘어야 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정주 여건을 바꿔내는 새로운 흐름이 부산에서 등장했다. 그 주체는 행정도 제도도 아닌, 스스로 만들어진 민간 커뮤니티들이다. 그중에서도 다가치(DAGACHI)의 성장 속도와 확장 규모는 단연 눈에 띈다.
다가치는 16개 언어 AI 자동 번역 기반의 생활 정보 플랫폼으로, 전국 20여 곳의 오프라인 센터와 일본·베트남·인도네시아 등 해외 네트워크까지 운영하는 대규모 정주 지원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병원·학교·지자체·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 등 수많은 기관과 협약을 맺고, 법률·노무·행정 전문가가 상주해 실시간으로 상담을 제공한다. 운영진은 외국인 축제, 대학 행사, 체육대회 현장을 찾아다니며 오프라인 접점을 넓혀간다.
다가치 앱에서 가장 활발한 게시판은 ‘주거’와 ‘일자리’다. 정주 과정에서 가장 먼저 막히는 지점이자, 외국인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운 영역이기 때문이다. 이 안에서 오가는 조언과 경험은 단순 번역 서비스나 기술로는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이다. 외국인의 어려움이 언어 이전에 ‘관계의 부재’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다가치는 지금 이 도시에서 외국인이 처음 손을 내밀 수 있는 ‘생활 인프라’로 자리 잡고 있다.
부산을 ‘사는 도시’로 느끼게 하는 또 다른 힘은 HIBA(Hidden Busan Adventures for Foreigners) 같은 생활 커뮤니티에서 나온다. 이들은 매달 셋째 주 토요일이면 부산의 산과 바다를 함께 걸으며 도시를 몸으로 익힌다. 오륙도~이기대 해안길을 걸으며 “이런 곳이 있는 줄 몰랐다”고 감탄하고, 송정에서 서핑과 플로깅을 즐기며 서로의 일상이 겹친다. 그렇게 함께 보내는 시간은 단순한 취미 활동을 넘어, 이 도시와 사람에 대한 이해를 천천히 넓혀준다.
외교관, 연구자, 유학생, 영어 교사, 주재원 등 서로 다른 배경의 이들이 모여 친구가 되고, 생활 정보를 나누고, 지역사회와 연결되는 과정은 정주가 곧 관계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개인이 운영하는 커뮤니티인데도, 불과 반년 만에 150명 규모로 커진 이 모임은 단순한 취미 공동체가 아니라 외국인이 지역사회로 스며드는 하나의 경로가 됐다.
정주 외국인은 부산의 ‘미래 인구’이기도 하다. 인구 감소와 인재 유출을 먼저 체감한 도시에서 새로운 시민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소중한 자원이다. 관광객은 떠나지만, 정주 외국인은 일하고 세금을 내고 관계를 만들며 도시의 일원이 된다. 그들을 어떻게 맞이하느냐가 부산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부산이 지금 외국인을 대하는 방식은, 이 도시가 미래 세대와 새로운 시민을 어떻게 맞이할지 비춰주는 거울이다.
정주 여건을 개선하는 데 반드시 거창한 정책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우선 필요한 것은 ‘정주 외국인을 이 도시의 시민으로 바라보는 시선’이다. 그 시선이 자리 잡는 순간 행정은 다언어 안내를 넓히고, 지역사회는 편견의 문턱을 낮춘다. 학교와 기업 역시 외국인을 소비자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 도시에서 외국인은 자연스럽게 살아갈 수 있는가?” 부산이 관광객의 도시에서 함께 사는 도시로 나아가기 위해선 결국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외국인이 살아가기 편한 도시는 결국 누구에게나 편안한 도시다. 그래서 이 질문은 부산의 미래 경쟁력을 향한 질문이기도 하다.
김동주 기자 nicedj@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