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균열의 미학 - 루이스 부르주아의 거미와 인간의 불안
부르주아, Maman, 캐나다 국립미술관, 오타와(Creative Commons Attribution 2.0 Generic license).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11월 하순, 겨울의 문턱에서 세상은 더 불안하게 느껴지는 법이다. 불안 속에서 인간은 자기 안의 균열을 느낀다. 루이스 부르주아(1911~2010)는 바로 그 균열의 깊이를 직시한 인물이다. 그에게 예술은 상처와 불안을 봉합하려는 생의 행위였다.
대표작 ‘Maman’은 높이 10m가 넘는 거대한 거미 조각이다. 차가운 강철로 만들어졌지만, 그 속에는 놀라우리만치 따뜻한 감정이 흐른다. 그에게 거미는 어머니의 초상이었다. 실을 잇고 알을 품는 존재, 부드럽지만 단단한 생명의 상징. 어린 시절 부르주아는 아버지가 가정교사와 오랜 시간 동안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 모습을 지켜보며 깊은 상처를 입었다. 병약한 어머니는 그런 상황을 묵묵히 견디며 침묵으로 일생을 버텼다. 불안정한 가족 관계 속에서 부르주아에게 ‘실을 잇는 행위’는 단순한 손노동이 아니라, 배신과 상실로 찢긴 마음을 꿰매는 치유의 의식이었다.
거미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무너진 세계를 다시 엮는 존재다. 부르주아의 예술은 단단한 구조 속에 내면의 흔들림을 새겼다. 그 균열은 곧 인간의 존엄을 지탱하는 틈이 된다. 우리는 완벽한 상태에서가 아니라, 부서진 자리에서 진실을 배운다.
‘Maman’은 단순한 거미가 아니다. 그 육중한 다리들은 강철로 만들어졌지만, 마치 바람에 흔들리듯 유기적인 곡선을 그린다. 부르주아는 그 안에 인간의 모순된 감정을 함께 새겼다. 보호와 위협, 부드러움과 냉혹함, 사랑과 공포가 한 몸 안에 얽혀 있다. 바로 인간 존재의 내면 구조가 그렇듯 말이다.
부르주아는 “예술은 내 어머니의 직업, 즉 복원의 일이다”라고 했다. 그의 어머니는 직물 복원가였다. 낡은 천의 찢어진 부분을 실로 꿰매 복원하는 일. 예술은 이처럼 상처를 덮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고 봉합하는 행위였다. 그래서 그의 조각은 균열과 흔들림을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아름다움의 한 부분으로 끌어안는다.
오늘의 사회 역시 불안을 내포한 시대다. 전쟁과 혐오, 과도한 경쟁과 가파르게 질주하는 기술 사이에서 인간은 더욱 연약해지고 흔들린다. 그러나 부르주아가 보여준 것은 바로 그 취약함의 미학이다. 실을 잇듯, 상처를 드러내며 타인과 관계를 회복하는 것, 그것이 예술의 윤리적 실천이다.
불안은 결함이 아니다. 그것은 살아 있다는 증거이며, 서로를 잇는 보이지 않는 실이다. 부르주아의 거미가 찬 하늘 아래 묵묵히 실을 잇듯, 우리 또한 자신의 균열을 꿰매며 하루를 견딘다. 세상을 다시 엮는 일은 언제나 불안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불안 속에서, 인간은 다시 인간이 된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