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판결에도 미적대는 가스공사에 뿔난 어민들 “더는 못참아”
지난해 5월 패류 소음 피해 인정
어민대책위 ‘보상금+연체금’주장
공사 “연체금 근거 없다”며 거부
보상금도 염소 주장 배제시 지급
통영·거제·고성 어민 500여 명
12일 통영기지본부서 결의대회
17일에는 대구 본사 집회 예고
거제통영고성어업피해손실보상대책위원회는 12일 한국가스공사 통영기지본부 앞에서 어민 결의대회를 열고 패류 소음 피해 인정 확정 판결에 따른 즉각적인 보상금 지급을 요구했다. 현장에는 주최 측 추산 지역 어민 500여 명이 함께했다. 김민진 기자
“가스공사는 용역 결과를 수용해 어업피해 보상금을 즉시 지급하라!”
12일 오전 11시 30분 한국가스공사 통영기지본부 정문 앞. 제법 두툼한 외투를 걸쳐야 할 정도로 부쩍 쌀쌀해진 날씨에도 삼각지 도로가 몰려든 인파로 북적인다. 줄잡아 500여 명. 모두 생업을 접고 달려온 지역 어민들이다. 붉은 띠를 머리에 두르고 손팻말을 든 이들의 얼굴엔 비장감마저 감돈다.
애초 어업 피해가 확인 될 경우 합당한 보상을 하겠다고 공언했던 가스공사가 정작 피해를 인정한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온 지 2년이 다 되도록 약속을 지키지 않자 참다못한 어민들이 집단행동에 나선 것이다. 잔뜩 긴장한 경찰과 방호 인력 사이로 가스공사를 향한 날 선 구호가 연거푸 울려 퍼진다.
거제통영고성어업피해손실보상대책위원회 손병일 공동위원장은 “명색이 대한민국 최고 공기업이 언제까지 힘없는 어민을 우롱할지, 어민들 다 죽길 기다리는 건지, 정말 울화통 터진다”고 언성을 높였다.
대책위에 따르면 대법원 제1부는 작년 5월 가스공사가 한국해양대학교 산학협력단을 상대로 제기한 ‘염소·소음 어업피해조사용역 원상회복 및 계약대금 반환 청구’ 소송에 대해 ‘원고 일부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문제의 용역은 2015년, 가스공사가 해양대에 의뢰한 ‘통영기지본부 운영 및 제2선좌 건설공사 어업피해 추가 조사’다. 가스공사가 2013년 집행한 345억 원 규모 1차 어업피해 보상에서 제외된 염소와 굴 등 패류 소음 피해 인정 여부를 규명하기 위한 절차였다.
당시 패류는 청각 기능이 없는 데다, 염소의 해양생물 위해성은 국내외를 통틀어 인정된 사례가 없다며 어민들 요구를 일축하던 가스공사는 계속된 어민들 반발에 뒤늦게 해양대에 관련 용역을 의뢰했다. 이후 2년여에 걸친 연구 조사를 거쳐 2017년 3월 최종보고서가 나왔다. 연구팀은 보고서에서 소음과 염소로 인한 주변 어업 피해가 상당하다고 결론냈다.
그런데 가스공사는 내부 자문단 의견을 근거로 ‘오류 보고서’라며 채택을 거부했다. 잔류염소 임계치를 너무 낮게 설정한 데다, 통영기지 배출수 잔류염소 농도를 0.1ppm 이하로 관리 중인데 실측치 평균이 이보다 높게 나왔고, 다른 잔류염소 발생원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거제통영고성어업피해손실보상대책위원회는 12일 한국가스공사 통영기지본부 앞에서 어민 결의대회를 열고 패류 소음 피해 인정 확정 판결에 따른 즉각적인 보상금 지급을 요구했다. 현장에는 주최 측 추산 지역 어민 500여 명이 함께했다. 김민진 기자
가스공사는 보고서 수정을 요구했지만 연구팀이 거부하자 용역계약을 파기하고 선지급한 용역비를 돌려 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였던 대구지법은 2021년 1월 용역사가 불리한 내용을 수정해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한 것은 부당하다며 가스공사 청구를 기각했다. 염소와 소음에 따른 어업피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법원이 인정한 셈이다.
가스공사는 곧장 항소했지만 2심 판단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염소 피해 내용 중 ‘수치모델실험’ 결과에 오류가 있다는 공사 측 주장은 받아들여 ‘염소피해조사용역’은 완료하지 못한 것으로 봤고, 대법원도 이를 인용해 상고를 기각했다.
이에 대책위는 소음 피해 우선 보상을 요구했다. 하지만 공사는 2014년 대책위와 체결한 어업피해 조사용역 합의서를 근거로 일괄보상해야 한다고 맞섰다. 이후 몇 차례 실무 협의를 통해 일부 접점을 찾았지만 염소 피해 재조사 방식과 연체금 적용 등에 이견이 커 여태 평행선이다.
거제통영고성어업피해손실보상대책위원회는 12일 한국가스공사 통영기지본부 앞에서 어민 결의대회를 열고 패류 소음 피해 인정 확정 판결에 따른 즉각적인 보상금 지급을 요구했다. 굴수협 지홍태 조합장이 규탄 발언을 하고 있다. 김민진 기자
대책위 박태곤 공동위원장은 “매번 이런 식이다. 그렇게 기다리다 보상 한 푼 못 받고 돌아가신 어민이 한둘이 아니다”며 “공기업답게 결과를 인정하고, 소음 피해부터 적극 보상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책위는 이날 결의대회를 시작으로 17·18일에는 대구에 있는 가스공사 본사에서 집회를 이어갈 계획이다.
반면, 가스공사는 보상을 지연시키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고 해명했다. 가스공사는 “통영기지 건설 단계부터 현재까지 어업 보상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이미 주변 지역에 총 770억여 원 상당의 보상을 완료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패류 소음 피해 우선 보상을 위한 감정평가를 실시하고 염소 피해는 재조사 후 보상하는 안을 제안했지만, 어민 측이 추가 요구를 하고 있어 협의 중”이라며 “대책위와 기존 약정서 변경 등 여러 방안을 놓고 계속 협의 중이다. 결론이 나오면 즉각 관련 절차를 진행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