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부산, 가덕신공항과 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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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률 벡스코 상임감사

2000년, 뉴밀레니엄으로 들어섰을 때, 부산은 ‘부산의 꿈’이라는 이름 아래 두 가지 큰 비전을 품었다. 첫째는 동북아 물류 중심지로 도약하기 위한 가덕신공항 건설의 꿈이었고, 둘째는 산업 기반을 넘어 문화·창조의 도시로 성장하고자 하는 새로운 미래상이었다.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그 약속이 어떤 현실로 다가왔는지 돌아보는 시간 앞에 서있다. 올해 APEC의 장면들은 이러한 성찰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이번 APEC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은 세계 AI 혁신의 아이콘인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우리나라 기업인들과 치맥을 나누며 '깐부'를 외친 자리였다. 그는 한국을 ‘기술 동맹의 중심’이라 치켜세웠고, 치열한 세계 정치 속에서도 우리나라가 지닌 가능성과 신뢰를 재확인시키는 강력한 메시지를 남겼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우리나라의 미래뿐 아니라 부산이 걸어가야 할 길도 다시 떠올렸다. 바로 협력·연대·상생의 철학을 바탕으로 도시의 체질을 바꾸는 일이다.

가덕신공항은 단순한 건설 사업이 아니다. 그 자체가 연대의 도시 철학을 담은 상징적 공간이다. 부산·울산·경남이 각각의 이해를 넘어 하나로 연결되는 초광역 협력의 중심이며, 항만·물류·도시·관광이 한 흐름으로 움직이는 미래 행정의 ‘통합 플랫폼’이다. 지금 부산이 해야 할 일은 가덕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협업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산업·문화·환경·관광이 함께 움직이는 연결의 행정 패러다임으로 나아갔으면 한다. 가덕신공항이 완공되는 날, 부산은 단지 하늘길을 얻는 것이 아니라 미래세대에게 꿈꾸는 힘을 되돌려주는 도시가 되어야 한다.

부산은 오랫동안 제조·항만 중심 산업구조 위에서 성장해 왔다. 그러나 세계경제는 이미 AI·디지털·친환경 산업 중심 구조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으며, 이번 APEC에서 강조된 '기술을 통한 국가 간 협력' 흐름은 부산 경제에도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가덕신공항과 북항 재개발 사업은 AI 기반 스마트 물류, 자율 운항 선박, 디지털 해양 산업 등 부산 경제가 도약할 수 있는 미래 산업의 토대를 형성하고 있다. 부산이 글로벌 기술 기업, 연구기관, 스타트업과 연대하여 ‘연결 기반 경제도시’로 전환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부산은 더 이상 제조업 중심 도시의 정체성에 머물 수 없다. 청년 인재·창업 생태계·국제 기업 네트워크를 품을 수 있는 도시형 첨단 경제 허브가 되어야 한다. 도시의 품격은 문화에서 완성된다. 부산은 국제영화제, 바다·도시의 독특한 경관, 다층적 역사 등을 갖춘 가장 문화 잠재력이 큰 도시 중 하나다. 이런 지점에서 퐁피두센터 부산 분관 건립 논의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일부에서는 예산 문제나 지역 예술 생태계와의 관계를 우려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논의가 ‘찬성·반대’의 이분법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부산 예술이 세계로 뻗어가는 기회로 삼을 수 있는가를 중심에 두어야 한다.

퐁피두는 부산 예술을 대체하는 기관이 아니라 부산 예술을 세계와 연결하는 문화 확장 플랫폼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해 연착륙 후 부산 작가들이 참여하는 공동 기획전, 청년 예술가 국제 교류 프로그램, 부산 작가 해외 연계 등의 '상생 구조'를 함께 설계해 나가야 한다. 부산의 미래는 단순히 시설과 예산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도시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언제나 철학이다. 그 철학은 지금 부산이 직면한 모든 영역에서 하나의 방향으로 모여야 한다.

가덕은 공항이자 협력의 상징이다. 북항은 혁신경제의 시작점이며, 퐁피두는 부산 예술의 확장 플랫폼이다. APEC에서 확인된 대한민국의 가능성처럼 부산의 미래도 연대·협력·상생의 철학에서 더욱 크게 펼쳐져야 하며 부산이 지향하고 있는 도시 철학과 닮아 있다. 부산의 꿈은 과거를 기념하는 꿈이 아니라, 미래세대에서 건네는 희망의 꿈이 돼야 하며, 부산다움과 세계를 연결해 도시문화가 생동감이 넘쳐나는 부산으로 만들어져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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