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동윤의 비욘드 아크] AI 시대, 인간을 향한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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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지엔지니어링건축사사무소 대표이사

효율·생산성 높은 AI, 설계 영역 확장
골목길·오래된 주거 '비효율' 공간 인식
건축, 기술 경쟁 아닌 인간 존엄 지켜야

건축은 본래 인간의 결핍에서 시작됐다. 비를 피하려고 지붕을 얹고, 바람을 막기 위해 벽을 세우고, 불을 지피기 위해 벽난로를 만들었다. 인간의 불완전함은 건축의 출발점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건축은 인간의 불완전함을 지우기 위해 시스템화한다.

스마트홈으로 자동화된 주거와 데이터 기반의 도시 관리 시스템은 인간의 노동을 줄이고 효율을 높이는 듯 보이지만, 동시에 인간을 공간의 주체에서 사용자로 바꿔놓는다. 스스로 창문을 여는 대신 앱으로 공기를 조절하고, 몸으로 기억하던 계절의 변화를 ‘센서 데이터’로 확인한다. 기술이 설계한 단지에서는 엘리베이터 호출과 조명 제어는 간편하지만, 그만큼 이웃 간의 ‘우연한 마주침’은 줄어든다. 이제 인간은 공간을 경험하지 않고, 조작한다.

부산의 에코델타 스마트시티 프로젝트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스마트시티 모델이다. 이 프로젝트는 공공·민간 예산이 투입돼 설계 초기 단계부터 AI, 로봇, 증강현실(AR)을 도시 설계 전반에 녹여 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미래를 위해 필요한 매력적인 프로젝트임이 분명하다. 교통 흐름을 AI가 통제하고, 조명·환기·쓰레기 처리를 자동화하며, 빅데이터가 도시의 ‘살아 있는 상태(Live-state)’를 모니터링한다.

AI는 설계의 영역에서도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몇 초 만에 수천 가지 평면 조합을 제시하고, 구조·일조·에너지 효율을 최적화한다. 언뜻 보면 인간 건축가보다 훨씬 똑똑하다. 그러나 그 알고리즘은 어디까지나 ‘결정된 목표’를 향해 달릴 뿐,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없다. “이 구조가 가장 합리적이다”라고 말할 수 있지만, “이 집이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는 대답하지 못한다.

기술이 도시를 주도할 때, 사람은 설계의 주체가 아닌 객체로 자리매김할 위험이 있다. AI는 공간의 효율과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동선을 최적화하고 ‘쓸모없는 여백’을 허락하지 않는다. 기술이 우선순위를 설정하고 알고리즘이 도시를 재배치하면, 낡고 복잡한 골목길이나 오래된 주거지의 생명력은 데이터 지도에서 ‘비효율’로 등록될 수 있다. 그러나 사실, 그 ‘비효율의 공간’ 속에서 사람들은 머물고 관계를 맺어왔다. 기술이 인간의 삶을 대체할 수 없다는 인문학적 직관이 여기에서 작동한다. 그래서 건축가는 기술이 만들어내는 공간의 편리함과 더불어, 그 공간을 사용할 인간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 AI는 도시를 예측 가능한 질서로 만들지만, 도시의 매력은 언제나 예측 불가능한 곳에 있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몇 년의 프로젝트로 초고층 건물이 즐비한 도시를 계획할 수는 있겠지만 수많은 시간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골목은 재현할 수 없다. 광복동의 오래된 건물들, 비 오는 날 지붕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 불규칙한 간판들이 만든 거리의 리듬 등 그런 풍경은 알고리즘이 설계할 수 없는 우연의 결과다. 도시는 인간의 흔적이 쌓인 집합체로 언제나 불완전하다. 그 불완전함이야말로 인간다운 아름다움의 근원이다.

기술은 결국 도구다. AI가 완벽해질수록, 건축가는 기술을 넘어 사람의 존재 방식을 물어야 한다. 스마트시티가 지향하는 ‘모두를 위한’ 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기술이 먼저가 아니라 사람이 먼저여야 한다. 기술이 도시를 ‘최적화’할 때, 건축은 도시를 ‘공존’으로 설계해야 한다. 그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여전히 사람이고, 건축이다.

히틀러와 나치 시대를 경험했던 한나 아렌트의 저서 〈인간의 조건〉은 인간답게 사는 게 무엇인지에 대한 그의 사유가 담겨 있다. 그는 인공적 세계를 건설하면 할수록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소외된다며 과학적 전체주의를 경계했다. 기술의 시대를 ‘활동의 상실’이라 규정했는데 이는 인간이 세상을 만들던 행위를 잃고, 자동화된 세계의 관찰자로 남게 되는 상태다. 인간의 활동은 점점 더 효율성과 생산성의 논리에 종속되면서 공적인 삶은 축소된다.

“기술이 인간을 풍요롭게 만들었는가, 아니면 더 가난하게 만들었는가.”

현대사회에서 ‘빈곤’은 물질의 결핍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동화된 시스템 속에서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의 ‘감각과 관계의 결핍’, 생존을 위한 노동에 과도한 시간을 사용해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에 필요한 기본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는 ‘시간 빈곤’도 빈곤의 현상이다. 빈곤을 해결하는 길은 더 많은 데이터가 아니라, 인간적인 감각을 되찾는 일이다.

AI가 아무리 정교해져도, 인간이 느끼는 감각의 모든 것은 알고리즘의 언어로 번역되지 않는다. 이제 건축은 기술의 경쟁이라기보다는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일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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