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해변의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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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음(1964~)

한 장씩 파도를 받아본다

파도 속에 무엇이 들어있나

일간지처럼 성실하게 배달되는 슬픔

슬픔을 후벼파고 나면

산문처럼 밀려오는 것들

잠시 동안

눈을 감았는데 생겨나는 노을

어디든 번져나간다

사람들은 해변으로 와서

웃고 떠든다

웃고 떠드는 것만이 그들을 에워싸고 있다

그들은 슬픔을 위로할 줄 아는 전문가

해안선이 뒤엉킨다

오래 슬픔에 붙들려 슬퍼하다 보니

슬픔도 내 몸에 살고 있는 장기(臟器)라는 생각

속수무책

날마다 나에게 슬픔을 갖다 바치는 것들

슬픔도 무엇도 괜찮다

모래톱에

사람들이 벗어두고 간

발목이 쌓인다

혹시라도 남아있는 슬픔을 모두 벗어두고 가는

전문가들

시집 〈고독한 건물〉 (2025) 중에서

슬픔이란 감정은 우리를 힘들고 고통스럽게 하지만, 자신의 부족함을 돌아보게 하는 소중한 감정이기도 합니다.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과 겸손함을 배우고, 인생의 소중한 가치나 관계를 일깨우며, 자신의 부족함을 돌아보게 하는 소중한 슬픔은 억눌러야 할 대상이 아니라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허락해줘야 할 감정입니다. 자기반성의 시간으로 우릴 안내하는 슬픔에 귀를 기울이고, 보듬는 방법을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해변을 찾아온 사람들은 자신의 슬픔을 들여다볼 줄 아는 전문가, 웃고 떠드는 듯 보여도 실은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전문가들인 것입니다. 삶에서 무언가가 결핍되었다는 신호가 오면 바닷가를 찾아가 보는 것도 좋은 치유책이 될 것 같습니다. 신정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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