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잃어버린 아버지 위해 아들이 여는 ‘서재만 회고전’
21~26일 금련산역갤러리
순수 추상 60여 점 선보여
뜻있는 부산 미술인도 동참
“아흔을 바라보던 무렵 아버지는 1호 작품 100점을 창작하겠다고 목표를 정하셨지만, 60여 점이 완성되었을 때 알츠하이머 병세가 심해지면서 작품 활동을 멈추셨습니다. 너무 늦지 않게 회고전을 할 수 있게 되어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우리 가족은 앞으로도 미술을 사랑하고 아끼는 존재로서 계속 응원하겠습니다.”
21~26일 부산 수영구 금련산역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서재만 회고전: 묻혔습니다’를 앞두고 아들 서유억 씨가 지인들에게 보낸 초대장 문구 중 일부이다. 이번 전시는 병세가 악화하면서 더 이상 작품 활동이 불가능해진 1933년생(93세) 아버지를 위해 아들이 여는 회고전이다. 미술과는 전혀 무관한 일을 하는 아들이지만, 어릴 적 아버지를 많이 따라다니며 미술인들의 얼굴을 익혔고, 비록 기억은 잃어버리셨지만 살아생전에 회고전을 열어 드리고 싶어서 어렵사리 준비한 자리였다. 21일 오후 열린 개막식에는 휠체어를 탄 서 화백 외에도 150여 명의 미술인과 가족, 지인이 참석해 성황을 이루었다.
서 화백은 경남 함양 출생으로 1955년 부산사범대학을 졸업했다. 경남여고, 부산여고, 진주여고 등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1973년 부산의 미술 동인 ‘혁(爀)’에 합류해 활동했다. 이후 부산미술대전 운영위원장, 부산창작미술협회 회장을 역임하고, 40여 년의 교직 생활을 마감하고 김해에 안착해 서재만 갤러리를 운영했다.
전시작은 모던과 현대미술 사이를 방황했던 부산 미술의 일면을 살펴볼 수 있도록 1970~80년대의 미니멀한 순수 추상 작품 60여 점을 선정했고, 가장 많은 양의 작품을 남긴 ‘묻혔습니다’를 주제로 관람객을 맞고 있다.
미술평론가 이유상은 서 화백에 대해 “1960년 이후 모더니즘 답습의 부산 화단에 새로운 현대미술의 시각을 열었고 이에 따라 다양한 미술의 방법론을 개척한 화가였다”고 평가하면서 “그의 작품을 초기의 조형 연구로 실험 단계라 할 수 있는 ‘파랑(波浪)의 시대’(1960~1980), 중기의 고민하던 조형예술 모습이 더 완고하고 견고하게 구축되고 여러 작품으로 파급되는 ‘파장(波長)의 시대’(1980~2000), 만년의 ‘고요의 시대’(2000~2025)라 할 수 있다”고 전했다.
한편 이번 전시는 청년 작가들과 원로 작가를 후원하는 부산의 비영리 단체 S 문화예술기획(대표 김미숙 서양화가)이 주도적으로 마련했다. 김 대표는 서 화백과 부산창작미술협회와 혁 동인에서 함께 활동한 인연이 있다. 이번 전시를 앞두고 1년 가까이 서 화백 작품을 정리하고, 목록화했으며, 125쪽에 달하는 양장본 도록 출간과 전시 기획 전반을 진행했다. 모든 경비는 아들이 부담했다.
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