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넘기다 보니 평범한 삶의 소중함 찾았네
■ 시작점/ 이량덕
점 하나가 만든 세상의 큰 변화
기분 좋은 전화점 선물하는 듯
■ 면봉이라서/ 한지원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면봉 역할
평범함과 특별한 공존하는 이야기
작가 혹은 예술인이라고 불리는 이들은 창작의 고통을 늘 토로한다. 대부분 ‘무엇을 그릴까’ ‘무엇을 쓸까’ ‘무엇을 촬영할까’ ‘무엇을 노래할까’ ‘무엇을 표현할까’ 등이다. 그 무엇이 정해지면 ‘어떻게’로 고민은 이어진다. 사실 우리의 삶 그 자체가 팍팍한 세상에서 자신을 버티게 할 무엇을 찾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런데 의외로 이 고민에 관한 답을 가까이서 찾을 수도 있다. 그림책 <시작점>과 <면봉이라서>는 유쾌하게 그 답을 알려준다.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우는 그림과 한 문장의 글밥으로 구성했지만, 이 책들을 단순히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으로 한정할 수 없는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 각 문장은 마치 스승이 제자를 깨닫게 하는 화두 같다. 페이지가 넘어갈 때마다 마주하는 문장은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진다. 삶의 경험치에 따라 해석할 여지가 매우 많다는 뜻이다. 자연스럽게 여러 번 읽게 되고, 그게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기도 하다.
<시작점>은 작고 평범한 점 하나가 주인공이다. 이 점이 집의 문을 두드려 집 문이 열리고 세상의 빛이 집으로 들어온다. 식물을 피워 내는 씨앗, 시곗바늘 하나하나 모아 고정하는 부품, 바다를 바라보는 시간, 멋진 분위기를 잡는 방법 등 정말 다양한 장면에서 작고 평범한 점 하나가 언제나 이야기의 중심에, 그림의 중심에 있다.
이 작은 점이 있어 안정감이 들고, 때론 긴장감이 생기기도 한다. 물론 쾌감도 일어난다. 하나의 점이 퍼져 나가 결국 세계를 움직이게 하는 감각이자 동력이 된다. 모든 일의 시작에 ‘첫 빛’ ‘첫소리’ ‘첫 약속’ ‘첫걸음’이 있음을 깨닫고, 서툰 처음이 인생의 생기를 주고 끝없는 가능성으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디자인을 전공한 저자는 “오직 그림책 장르만 할 수 있는 예술 체험을 지면 위에 펼쳤다. 점 하나로 이렇게나 많은 감정에 이를 수 있고 이렇게 오래 이야기 나눌 수 있다는 걸 기억해 낼 것이다”라고 전했다. 이어 저자는 “처음에는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그냥 평범한 하루, 평범한 순간, 한 점 한 점을 담다 보니 아무것도 아니던 것에서 어떤 점을 발견했다. 어느 날엔 아무것도 아니게 흘러간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조용한 시작점이 될 수도 있다”라고 덧붙였다.
이 책은 제5회 사계절그림책상 우수상을 받았다. 이량덕 글·그림/사계절/52쪽/1만 5000원.
<면봉이라서>는 정말 우리 일상 작은 구석에 흔하게 있는 면봉을 주목했다. 책은 “나는 광부야”라는 고백부터 시작한다. 어둡고 비좁은 동굴(코 혹은 귀)에 들어가서 누렇고 딱딱한 걸 캐내는 광부가 되기도 하고, 어떨 땐 다친 곳을 치료하는 의사가 된다. 고장 난 곳을 뚝딱 고치는 수리공, 꼼꼼하고 깔끔한 청소부도 되는 등 면봉은 다양한 역할을 소화한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애매한 존재감이지만, 매일매일 주어진 일을 해 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면봉과 친구들은 가지런히 놓인 비닐봉지에서 와르르 쏟아지고, 친구 몇몇이 사라진다. 얼마 후 친구는 몰라보게 달라진 모습으로 나타난다. 다이어트에 성공해 양쪽이 굉장히 날씬해져 이젠 모델(이쑤시개)로 활동하겠단다. 평범한 면봉을 벗어나 특별한 삶을 살고 싶다던 그 친구 역시 나중에는 면봉과 비슷한 일을 하게 되는 것도 보여준다.
어떨 땐 부러지기도 하고, 특별한 일을 하는 것 같지도 않지만, 면봉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자신을 인정한다. 재밌고 설레는 일이 생길 것이라며 수많은 가능성도 열어둔다.
책에선 면봉이 이렇게나 많은 일을 한다는 걸 창의적인 그림으로 보여준다. 특히 물감과 연필로 마치 실제처럼 배경을 그린 후, 면봉은 촬영한 이미지를 겹쳐 올렸다. 이야기의 몰입도를 높이고 그림과 실사 이미지가 어울리는 매력이 남다르다. 친한 친구에게 이야기를 건네는 듯 다정한 말투도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저자는 “어지러운 책상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던 면봉을 빤히 보다가 이 책을 쓰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책을 읽다 보면, 마치 친구와 수다를 떨며 무거웠던 고민이 아무렇지도 않은 이야기가 되는 상황이 떠오른다. 한지원 글·그림/사계절/52쪽/1만 5000원.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